
어제는 대전광역시 월간지인 ‘대전이즈유’ 명예 기자 기자단 회동이 있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전임(前任) 편집장님을 모시고 대흥동 ‘바다황제’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편집장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내가 많이 수척해졌다며 걱정을 해 주셨다. “9개월 동안 힘든 공공근로를 하느라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다. 그러나 내일만 근무하면 끝이다.”라고 했더니 “앞으론 뭘 하실 거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다섯 번째 저서의 출간에 박차를 가할 작정이라고 하니 “부디 베스트셀러가 되길 응원하겠다. 그런데 새로 쓰는 책은 제목이 뭐냐?”고 물으셨다.
“네,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입니다.” “와~ 제목부터 범상치 않네요.” 신간의 제목을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으로 설정한 건 물론 중의적(重義的)이고 포괄적(包括的) 표현의 작명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살면서 우리네 인생이 어찌 달랑 ‘두 번’만 아프겠는가? 그보다 몇십 배 혹은 몇백 배의 아픔과 원치 않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같이했거늘. 아무튼 기자단에서도 이구동성 베스트셀러를 응원하는 바람에 기분이 낭창낭창했다.
그래서 또 만취할 수밖에. 마지막 근무일은 오늘도 공공근로장인 00구 양묘장에 나갔다. 잡다한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몰렸다. 노동 강도가 세다 보니 그제 다친 허리가 다시금 욱신욱신 쑤셔왔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께 “그만두는 날까지 그야말로 뽕을 빼는군요.”라고 농을 던지니 맞다며 웃으셨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뽕’이란 용례의 사용 사례는 다음과 같다.
- 1. “직장 상사에게 일을 못 한다고 뽕 빠지게 혼났다” / 2. “오늘은 뽕이 빠지도록 힘들게 일했다“ / 3. ”한턱 내게 해서 저 친구 월급의 뽕을 뽑자” / 4. “한턱 쓰는 바람에 내 돈이 그만 뽕 빨렸다” =

대개 이런 경우에 인용한다. 물론 나의 이 설명이 분명 적확하지는 않음을 밝힌다. 오늘은 근무 마지막 날에 주어지는 어떤 ‘특권’에 의거, 오전 근무만 마치고 귀가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얼마 전 자원봉사와 연관하여 내가 취재한 인터넷 기사를 출력한 뒤 브로마이드(bromide)로 크게 만들었다는 지인의 카톡이 들어왔다. 인터뷰이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까지 맡고 있는 나는 자원봉사와 관련된 취재를 자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지인의 소개가 절대적이다. 혹여 ‘기레기’ 내지 돈을 받고 취재를 하는 줄 알고 착각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순간 ‘기자의 보람’으로 크게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베푼 선행이 언론에 보도되고 또한 이를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브로마이드까지 선물로 받는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런 맛에 기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