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문화재단(대표이사 심규익)이 수탁운영하는 대전광역시 테미오래가 10월 29일 토요일 ‘2022 테미올래축제’를 개최했다.
테미올래축제는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올해는 할로윈 기간 중 테미오래만의 레트로 분위기와 핼러윈을 컬래버하여 테미오래를 대표하는 축제로 구성했다.
많은 행사 중 오후 3시 테미메모리 사업으로 진행하는 심대평 전 도지사의 토크콘서트가 도지사공관 정원에서 열렸다.

▲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토크쇼(사회 이용원)
이용원: 심 지사님,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 여러분이 많이 모이셨는데 간단하게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심대평: ‘심대평 도지사가 관사를 기억하다’라는 제목으로 테미올래 축제의 한 장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전문화재단에서 준비하고 심규익 대표 등 함께해주신 분들이 계시지만 사실은 토크콘서트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이십니다.
제가 도지사를 관선 3년을 포함 14년 정도 했습니다. 민선은 첫 회가 3년 임기였기 때문에 14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그때 저와 함께 도정을 운영해주셨던 도지사님, 국장님과 여러분들이 함께해주고 계시고 민간부분에서도 한평용 총재를 비롯해서 조정국 예술 회장 등 여러 단체회장님들을 비롯해 특히 제가 도정이 어려울 때 지식을 나눠주셨던 최준혁 교수 등 여러분들이 함께 자리를 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제가 충남도지사가 되기 전 81년, 86년 두 번 대전시장에 당선됐을 때 국장을 맡아주셨던 이문옥 국장을 비롯해서 김정인 처장님 등 시에서, 도에서 함께 해주셨던 분들이라 모두 기억에 남아있는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또 멀리서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계룡에서, 세종시에서, 다른 충남 여러 지역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이런 기회가 없었기에 제가 가슴속으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여러분의 신세를 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용원: 앉아서 본격적으로 지사님의 관사에 관한 기억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 질문이 이 자리에 머문 기간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인사하시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988년에 관선임명직 지사로 이곳에서 거주를 하셨고 그 뒤에 아시는 대로 3선 민선지사를 하시면서 그 기간 동안 관사에 계속 계셨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13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이 자리에 계셨고, 처음 이 공간에 들어오셨던 것은 1988년,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입니다. 34년 전이면 굉장히 오래 전인데, 처음 이 공간에 오셨을 때 느낌을 아직도 기억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관사와의 첫 만남이 어떠셨는지 말씀을 들어볼까요?

심대평: 그때는 이 관사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쉴 수 있는 공간은 안방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제가 잠자는 한 두어 평 남짓한 공간이 제가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젊었기 때문에도 그랬고, 업무가 바빠 사는 공간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 되돌아보니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다 가슴에 와 남아있는 그런 감회가 깊은 공간입니다. 또한 제가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민선 1기가 되며 도청이 이전해가면 이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지방문화재로 지정을 해 우리 역사와 문화가 더 희망찬 미래를 생산해내는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한 것을 참으로 고맙고 좋은 결정이었다 생각합니다.
이용원: 들어오시다 정문 쪽에 보시면 문화재 표지석이 있거든요 그게 심 지사님 계실 때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세운 표지석입니다. 심 지사님과는 두 달 정도 이곳에 와서 구석구석 둘러보면서 말씀을 한번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쪽에 거주하실 때하고 다시 와서 꼼꼼하게 둘러보셨을 때하고 달라진 점이 많이 보이셨나요?
심대평: 달라진 점…… 글쎄요. 특별하게 느끼는 것은, 옛날에는 아주 많이 낡은 건물이어서 후임자들이 어떻게 이 집에서 14년을 견디셨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낡았다고 느끼지를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오히려 아주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 더 정겹게만 느껴집니다.

이용원: 테미오래가 사실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1932년에 지은 건물이거든요. 단독주택에 살아보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기와 다르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사장님하고 같이 둘러보면서 여쭤보니까 사시는 동안에는 손을 댄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셨습니다. 10년을 넘게 사시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할 생각을 안 하셨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사모님을 위해서라도 하셨어야할 것 같은데(웃음).
심대평: 그건 제 잘못이 아니죠, 여기 저와 함께 근무했던 도청의 도지사님, 국장님들이 안 고쳐주시잖아요(웃음). 그런데 집은 손을 대면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됩니다. 요즘 리모델링이라는 걸 많이 하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좀 살기 불편하고 어려워도 집사람보고 불편도 감수하고 ‘좀 더러우면 어떻냐, 거기에 담겨있는 정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도 리모델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용원: 덕분에 우리가 원형을 많이 훼손하지 않은 시대적 역사성을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요, 저 뿐만 아니라 시민에게 공개된 뒤로 많은 사람이 공간을 방문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보는 공간이 2층 다다미방입니다. 1932년에 지었다고 했을 때 그런가보다 하지만 2층 다다미 공간을 보면 그때서야 그게 좀 더 실감나게 ‘정말 오래된 건축물이구나!’ 하는 게 다가오거든요.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궁금증은 ‘지사님께서 여기 거주하실 때 2층 다다미방을 어떻게 활용하셨는지’입니다. 활용은 어떻게 하셨나요?
심대평: 특별히 생활공간은 아니었고요, 다다미방은 주로 여름에 책을 읽거나 휴식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을 했습니다. 제가 딱 한 번 다다미를 바꾼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 다다미방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2년 된 일제의 건물이라는 걸 나타내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그래서 그걸 지키려고 노력을 했죠.

이용원: 다다미 기술자가 국내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심대평: 그때도 아마 전라남도에서 다다미를 사왔던 기억이 납니다. 별로 많이 쓰질 않으니까 그 후로는 바꾼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용원: 다다미 공간이 많은 시민이 인상 깊게 본 공간이라면 제 개인적으로 탐나는 공간은 사실 1층 응접실 공간이었습니다. 바깥 정원 모습도 아름답게 보이고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잖아요? 지사님 봤을 때 그 벽난로에 나무장작 피워놓고 앞에 흔들의자 놓고 거기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어요. 그랬더니 예상 외의 답변이 나와서 놀라기도 했는데요, 1층 응접실 벽난로 있는 공간은 어떻게 활용을 하셨나요?
심대평: 그것도 다른 분한테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여기 박건이 교수님이나 최준혁 교수님이 기억이 많이 나실 것 같습니다. 외빈들이 오시

면 물론 사용했지만 내부의 간부들도 많이 오셔서 도정에 관해서 함께 상의를 했던 공간이고 또 도민들 중에 참석하시면 여기 오셔서 차도 한 잔씩 하시며 좌담을 했던 공간으로 활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제가 떠나기 직전 2, 3년 전에 누군가가 거기다 제가 워낙 노래를 못한다고 노래방을 하나 시설을 해줬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용원: 노래방 기기가 들어와 있었군요. 노래도 좀 하시곤 했나요?
심대평: 내가 노래를 워낙 못해서 노래를 배우라고 설치를 해줬는데,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고 원래 음치거든요. 도저히 노래를 못 배우겠어서 잘 사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와서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용원: 가족으로는 두 분만 주거를 하셨고 당시에는 공관비서라는 직책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심대평: 여기 함께 참석해준 나와 고락을 같이 했던 비서실 실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몇 분 와 계신데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습니다. 실제로는 그 분들이 내가 일할 수 있는 분신의 역할을 다 해주어서 내가 14년 동안 쓰러지지 않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용원: 공관비서들이 여기서 주무셨던 거죠? 아까도 방 봤지만 그 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근무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밤에도 전화 받아야 하고요. 지금 여기 해설사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가 공관비서가 머물렀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당시 휴대전화가 없을 때니까 지사님이 출장이라도 가시거나 하면 모든 연락이 공관비서한테 와서 업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공관비서출신을 직접 뵐 수 있을지 몰랐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되네요. 지금은 방처럼 되어 있는데 거기가 지사님과 사모님이 사용하셨던 화장실이었죠?
심대평: 아니오, 화장실은 이 안쪽에 있는 안에 샤워기 달아놓고 좁은, 약간 지하로 내려가는 곳인데. 거기가 약간 무서워서 저는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그런 공간으로 기억됩니다.

이용원: 지금도 테미오래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밤에 해 떨어지면 가기 제일 무서워하는 공간이 1호관사거든요. 1호관사가 왠지 으슥하고 무섭대요. 말씀을 듣기로는 그 화장실에서 1호관사가 보였다고 하는데…….
심대평: 맞아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웠지 사실은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없지만, 그 앞에가 창문으로 컴컴한 게 늘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와서 놀랐다고 해요. 저는 병 나지 않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괜찮았습니다.
이용원: 1호관사에 거주하는 분도 있었는데 무서운 일이 실제로 벌어지진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짧은 에피소드 들었습니다. 저희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공간이 테라스고 이쪽 바깥에 야외정원인데 도지사로 이 공간에 근무하면서 내부공간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외부공간도 도정의 그 업무를 수행하면서 간혹 활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야외정원은 주로 어떻게 활용하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심대평: 야외정원보다는 여기를 도민들이 찾아오고 대전시가 같이 쓸 수 있었을 때, 예를 들어서 한때는 불판을 만들어놓고 바비큐도 해서 전국체전 선수단을격려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는 등 많은 공적인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민선 된 후에는 그런 공간을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철거를 했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도민들이 오면 천막을 치고 간단한 다과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용원: 도지사 공간 야외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이미 나 있는데요. 그 중에 많은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서쪽 편의 누워 있는 소나무인데 지사님도 알고 계신 소나무죠?

심대평: 네, 저 누워 있는 소나무, 쓰러져서 없어졌을 수도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은데 저렇게 누워서 편안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응접실을 말씀하셨는데, 그 응접실에서 내려다보면 쓰러져서 아주 죽을 것 같은 나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아주 편안한 와송으로 느껴져서 힐링이 공간을 만들어주는 수 있는 그런 나무입니다.
이용원: 듣기로는 지사님 계시는 동안에 저 나무 쓰러져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일으켜서 세워야 되지 않느냐고 산림과 담당과장님께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대평: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노송으로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여 혹시 밑에를 조금 받쳐서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소나무로 바꿔보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더 소나무한테는 나쁘다고 해요.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해서 저 와송 그대로 놔두었더니 그 와송의 느낌을 힐링의 공간으로 100%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용원: 저 와송을 이미 눕기 시작했을 때 지사님이 보신 거니까 실제 수령은 굉장히 오래된 나무겠어요?
심대평: 이 건물이 1932년에 세어진 건물이고 아마도 그때 옮겨 심었던 나무가 저렇게 노송이 되어서 비바람을 견디고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드니까 수령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나무가 다 그때 심었던 소나무들이고 이게 6·25를 지나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오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참으로 대견스럽지 않습니까?
이용원: 맞습니다. 오래된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깊은 인상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저쪽 뒤쪽에 후문도 지사님 저희는 그냥 후문으로 활용을 하고 있지만 지사님 계실 때도 활용하던 문이죠?
심대평: 처음에는 담이 저렇게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뒤쪽 공원으로 올라가는 후문 공원공간으로 썼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용원: 지사님 계실 때 저걸 잠깐 막아두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심대평: 도지사가 도망가려고 저걸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도지사는 도망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도망갈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문을 폐쇄했습니다. 그렇게 문을 막음으로써 활용을 안 한 적이 있지요.

이용원: 탈출이나 대피를 위해 만들었던 시설인 것 같은데 멋지신 말씀입니다. “도지사는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도지사 공간뿐만 아니라 이쪽 밑에 국과장급들 관사를 다 함께 아울러서 테미오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도청이 내포지역으로 옮기면서 대전시에서는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이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고 많은 담론들이 오갔습니다. 그 와중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요, 지사님이 이 공간자체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앞장서셨던 분이니까 이쪽 공간과 테미오래 일대가 대전시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좀 듣고싶습니다.
심대평: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테미 올래? 안 올래?” 그런데 테미오래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먼저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러한 시민 공간으로 만들었으니 더 많은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쉼터가 아닌 역사와 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테미오래공원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더 했습니다.
이용원: 제가 고자질 하나 하면 지사님한테 사모님 너무 많이 고생시키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지사님께서 가정과 전공하셔서 전공을 살리신 거라고 그렇게 답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심대평: 맞습니다. 제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묻는데 저는 비결이라는 게 없고 제가 조금 몸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면 무엇이든 만들어 먹여서 제가 이렇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빈말처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의 마음으로 당신이 없으면 그날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로 고마움을 표현해올립니다.
이용원: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요, 오늘 날씨와 이 공간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마무리 멘트 아니었나요? 많은 울림을 주는 말씀이셨고요, 오늘 긴 시간을 내지는 못하고 오늘 지사님한테 듣는 공관이야기는 이정 도에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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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오래는 1932년 조성되어 2013년 충남도청이 이전할 때까지 도지사 및 국장급 이상의 고위 관료들이 사용했던 옛 충청남도 관사촌이다, 테미오래는 도지사 공관과 9채의 관사가 관사촌으로 하나의 군락을 이루며 잘 보존도어 있는 전국의 유일한 공간으로 대전의 근현대 역사와 다양한 건축양식을 내재하고 있다.
테미메모리는 이러한 테미오래와 연관된 인물의 기억과 추억,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테미오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자료를 수집하는 아카이방 사업이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는 관선과 민선에서 양쪽으로 충남도지사를 역임한 독특한 이력이 있으며 민선자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실시된 세 번의 자치단체장선거에서 충남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충남지사 3선의 영예를 누리며 이 곳 테미오래 도지사 공관에서 13년 동안 거주했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 사람을 담다 ▲ 걸어온 길을 담다 ▲ 오래된 이야기를 담다 등 세 가지의 파트로 나누어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와 테미오래와의 오랜 기억에 대해 함께 추억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