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국화의 두 얼굴
[홍경석 칼럼] 국화의 두 얼굴
  • 홍경석
  • 승인 2022.11.04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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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화위지’의 기다림
절정으로 만개한 국화꽃을 향해 벌이 접근하고 있다
절정으로 만개한 국화꽃을 향해 벌이 접근하고 있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에서도 볼 수 있듯 국화를 꽃으로 피우기 위해서는 오랜 정성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진은 만개한 국화꽃에서 꿀을 추출하기 위해 접근하는 벌의 모습이다. 벌은 정말 놀라운 실력자다. 1분 동안 벌은 자그마치 1만 2000번의 날갯짓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노련한 비행기 조종사보다 백 배 이상 뛰어난 비행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강한 바람이 불어도 놀라운 안정성을 유지하며 날 수 있다. 비가 쏟아져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벌집을 찾아간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벌이 아니라 국화(菊花)이다. 절정(絕頂)에 달한 국화꽃의 오늘날은 내가 노력한 덕분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을지 몰라도 국화를 보려면 봄에 파종해야 한다. 여름에 꽃피고 가을에 만개하려면 국화를 키우는 사람의 지극정성이 관건이다.

특히 국화를 재배하는 장소가 비닐하우스라고 한다면 때맞춰 물도 적당히 줘야 한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국화꽃이 성장한 비닐하우스는 고된 노동력을 요구했다
국화꽃이 성장한 비닐하우스는 고된 노동력을 요구했다

올해도 우울한 코로나 시국은 여전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이런저런 축제가 동시 다발했다. 특히 가을은 축제가 많았다. 국화는 주로 축제 때 환영받는다.

비닐하우스에서 온갖 땀과 힘든 노동을 담보로 국화를 키워냈다. 그렇게 힘은 들었지만 ‘귤화위지’의 경우처럼 내 마음마저 긍정으로 변화시켰다. 즉 비닐하우스에서 만나는 각종의 국화꽃들은 그동안 꽃을 보던 관념과 관점까지 전환하게 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보는 경우, 크게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이루고자 그 사람은 그동안 과연 얼마나 노력했을까를 먼저 배우고 볼 일 아닐까.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이어진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이제 다음 주면 비닐하우스에서의 고된 노동을 마무리한다. 이어선 다섯 번째 저서의 집필과 출간에 박차를 가할 작정이다.

또 다른 무서리(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와 과격한 노동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로서는 즐거운 ‘귤화위지’의 기다림이다.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공짜가 없다, 꽃도 그렇다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공짜가 없다, 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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