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수의를 입고 재판받는 모습을 열 살 딸이 방청석에서 지켜볼 때 마음이 아팠는데 정작 딸아이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딸이 중학생이 되고 학원비가 없어서 대부분 과목은 청강하고, 수학 학원만 다녔다. 딸이 학원 끝날 시간에 오지 않길래 학원에 가보니 혼자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사가 수업 도중 10분가량 농담을 했더니 ‘비싼 돈 내고 수업 듣는데 왜 쓸데없이 농담하느냐. 농담한 시간만큼 수업을 더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하더라. 나보다 멘털(정신력)이 세다. 지금은 미국 예일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다.” =
10월 15일 자 모 일보의 인기코너인 [아무튼, 주말]에 나오는 주인공 아빠의 ‘피 울음’ 회고이다. ‘피 울음’은 피가 나올 듯할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분노하고 슬퍼하며 우는 울음을 뜻한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단박 딸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딸이 딱 한 번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성적이 줄곧 전교 일등을 질주하던 딸이었다. 그러나 중차대한 대입(大入)에 대한 중압감은 여타 고교생과 피차일반(彼此一般)이었으리라.
학원 등록금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딸은 사흘 만에 그 돈을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그 사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딸은 학원 관계자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학원 강사의 강의 내용이 내 수준에 맞지 않아 도저히 못 다니겠다!”는 게 이유였다.
학원 측에선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딸은 “나는 부동의 전교 일등 학생”이라며 더욱 강공을 폈다. 그러자 학원 측에선 딸의 기세에 놀라 그만 등록금을 환불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부유여강(父柔女強)이라는 생각에 한참을 웃었다. 이는 내가 만든 작위적 ‘사자성어’이다. 부전여전(父傳女傳)은 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따위가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것처럼 같거나 비슷함을 뜻한다.
반면 ‘부유여강’은 아버지는 비교적 부드러운 성격이나 딸은 반대로 탱크처럼 저돌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처럼 그렇게.
이는 제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제나라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가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여튼 [아무튼, 주말]의 주인공 딸이 예일대를 간 반면, 내 딸은 서울대를 졸업(동 대학원까지)했다. 결혼식 때는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웨딩홀 예식장으로 동문과 선후배를 모두 불러 그해 ‘3월의 멋진 신부’가 되었던 딸.
이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딸이 보고 싶다. 실은 딸이 낳은 외손녀가 더 눈에 밟힌다는 게 솔직한 토로일 것이다. 친정 아빠의 내리사랑(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함,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