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뇌했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왔다. 그리스에서는 2300여년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이며 지향점"이라고 간략히 정의했다. 이렇게 행복한 삶에 대한 인문학자 나름대로의 코칭은 23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최대 이슈이다.
한국에서도 행복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2000년도에 웰빙코칭아카데미로 시작한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선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국민행복감 증진을 위해 한국인들의 정서에 잘 맞는 행복 프로그램으로 행복멘토들 육성하고 있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는, '웰빙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하여 2011년도부터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에 관한 나름대로의 성과를 낸 NGO라고 자부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라는 특수 상황에서 행복멘토링 기법과 관련하여 86명의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들이 행복 코디네이터 인턴이나 행코 준전문가들을 육성하며 행복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와 필자가 설립한 국제웰빙전문가협회는 동서양 학문이나 종교간의 통섭과 융합을 통해 행복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칼럼에서는 세계적인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행복관을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다. 칸트는 '행복의 3대 원칙'에서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을 주장했다. 행복지도사 행복교육사 행복상담사 행복 코디네이터를 육성하고 있는 본인도 칸트의 주장에 찬성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것은 마틴 셀리그만이 강조한 '의미있고 즐겁고 몰입하는 것'과 매우 관련이 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행복실천기술론에서 더 심도있게 이 부분을 고찰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떠한 삶의 방정식을 요구할까? 이에 대하여 B.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랭클린은 "행복하려면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욕망을 적게 갖거나 재산을 많게 가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소유적 관점에서 프랭클린은 행복을 이해한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행복을 잃기는 무척 쉽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언제나 분에 넘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한 에피쿠로스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자는 비록 세계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불행한 사람이다"고 말한 것이나, 키케로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마음의 평온함을 뜻한다"고 주관적 안녕감 차원에서 개인의 정서적 웰빙 차원에서 행복을 이해하고자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행복은 행복지도사나 행복교육사 같은 전문가의 개인적 멘토링 도움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저절로 다가오는 행운과 다른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행복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등록한 행복지도사나 행복교육사 육성과정에서 무척 강조하고 있듯이, 결단코 행복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 까닭이다.
이처럼 행복은 반드시 생애 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행복을 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18세기 영국인들의 마음에 감성적 동기를 부여했던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들 수 있다. W.블레이크는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은 대개 노력가이다. 게으름뱅이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았는가? 수확의 기쁨은 흘린 땀에 정비례한다"고 말했다. 버트런트 A. W. 러셀도 "행복하려면 자신에게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줄 재능과 능력을 연마해야 함이 분명히 요구된다"고 말했다는 것에서 행복교육의 필요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메커니즘을 잘 활용하는 웰빙의 실천기술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행복은 관계에서 자란다. 고대 그리스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작은 집일지라도 마음이 진실한 친구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것은 철학적으로는 무지함의 자각을 의미한다. 그런데 행복인문학에서의 구체적인 의미는 스크루지 같이 이기심에 가득차 있는 그래서 '더불어'라는 가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인 자신임을 깨달으라"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관계의 중요성을 행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한 사람들이 많다. 벤 죤슨은 "진정한 행복을 만드는 것은 수많은 친구가 아니며, 훌륭히 선택된 친구들"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불행을 통해서 진정한 친구가 아닌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행복은 관계를 통해 성숙되며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아레테'(덕스러움)가 잘 향상된 사람과의 참 좋은 만남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행복이란 타자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의 마음가짐도 역시 중요하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행복은 거의 건강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며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 일은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하면 이러한 외면적 행복도 즐거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뛰어난 지(知), 정(情), 의(義)조차도 현저하게 감소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건강이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건강까지를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제일되는 염원이다.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 등과 같이 과거에 유명했던 사람이든 검사에서 대통령이 된 윤석열 대통령이든 간에 누구나 제일 먼저 소망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싶더라도 행복은 내 마음대로 쉽게 성취되는 것도 아니며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헬렌 켈러가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은 보지 못한다"고 절규한 것은 행복이라는 것의 매력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결국 인생은 미완성인 것을! 그래서 신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글> 김용진 교수, 전)한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유튜브 '인생이모작 행복 코디네이터' 크리에이터,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공보뉴스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