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네 번째 저서 [초경서반]](/news/photo/202208/96212_105165_1038.jpg)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 운동선수가 있다. 여기엔 각계각층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저명인사(著名人士)도 포함된다. 팬덤(fandom)은 이런 시류를 반영한다.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팬덤의 입장에서 평소 존경하는 ‘영원한 챔피언’ 홍수환 님을 뵈었다.
뭣하나 의지할 곳 없었던 지난 1974년, 당시 동양 챔피언이었던 복서 홍수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원정 시합을 떠난다. 거기서 아놀드 테일러를 15라운드 동안 4번이나 다운시키며 세계 챔피언에 당당히 등극한다.
이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와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홍수환 선수 어머니의 응답은 순식간에 국민적 유행어가 되었다. 가난에 찌들며 위락(慰樂)과는 사뭇 동떨어졌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덕분에 카타르시스와 힐링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그즈음, 복서 홍수환은 이러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후 파나마까지 날아가 ‘지옥에서 온 악마'로 불리던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에 KO로 누르고 두 번째 챔피언이 되었다. 그것도 `4전 5기'라는 신화까지 쓰면서.
이쯤 되니 그가 국민적 영웅이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너무나 당당하고 멋진 그의 모습은 단숨에 나의 멘토(mentor)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나도 복싱을 배웠다.

운동을 하면 좋아지는 것은 혈액 순환, 림프 순환, 노폐물 배출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피부까지 좋아지는 건 물론이며 가장 핵심은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는 것이다.
복싱을 배우기 전에는 애먼 매를 맞기도 다반사였지만 이후론 ‘천만의 말씀’으로 반전되었다. 물론 완숙(完熟)의 경지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오히려 운동을 설 배운 탓에 괜스레 ‘껌이나 씹는’ 앙똥하다(말이나 행동이 분수에 맞지 아니하게 조금 지나치다)의 범주에서만 맴돌았다 할 수 있다.
다만 나를 오늘날 작가로 만들어준 또 다른 멘토인, 경비원에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의 영향만큼은 지대했다. 아무튼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과도한 팬덤 그룹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감 놔나 대추 놔라 식의 과도한 주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좋아하는 가수가 신곡을 냈는데 “가사가 맘에 안 드니 바꾸라”는 것과 별반 다름 아니다. 이런 경우, 당사자가 느낄 당혹감은 오죽하겠는가?
선거 때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그렇지만 그 후보가 당초 기대와 달리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더라도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 팬덤은 그저 순수한 팬덤으로 그쳐야 한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팬덤이 비로소 스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