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초윤장산’ 단상
[홍경석 칼럼] ‘초윤장산’ 단상
  • 홍경석
  • 승인 2022.08.14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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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을 앞두고
저 산너머는 제주도일까?
저 산너머는 제주도일까?

오늘 드디어 제주도에 간다. 난생처음 바다까지 건너 제주도에 입도(入道)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다녀온 곳이란다.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제주도 구경을 못 했다.

그래서 벌써부터 설렘이 남해의 거센 풍랑(風浪)과 같다는 느낌이다. 지난달 대학원 동기들과 전남 여수로 여행을 갔다. 유람선을 타면서 남해(南海)와 조우했다. ‘여기서 더 달리면 제주에 닿을 수 있으련만...’

여행은 삶을 살찌우게 한다. 그런데도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는 이유는 파도처럼 넘실댄다. 비단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뿐 아니라 경제적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가뜩이나 먹고살기에도 급급하거늘 팔자 좋게 무슨 여행이란 말인가.

맞다. 여행은 보고, 먹고, 즐기는 과정이다. 움직이는 순간마다 돈이 들어간다. 물론 여행을 이렇게 경제적 측면으로만 자로 재듯 따진다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뉘라서 여행을 고려하겠는가.

근사하게 양복까지 차려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고 있다. 한데 그는 왜 그 지경이 되었을까. 원인은 한 가지, 돈이 없기 때문이다. 들어갈 땐 폼을 내어 들어갔지만 나올 적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모처럼 배가 터지라 고급 술까지 실컷 먹었는데 요릿집을 나올 방책이 전무하다.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궁여지책으로 도출해낸 방법은 36계 줄행랑. 결국 그는 뒷문으로 살금살금 도망치다가 그만 요릿집 관계자에게 잡히고 만다.

그리곤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매를 두들겨 맞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히죽히죽 웃는다.

바다에서는 배만 봐도 반갑다
바다에서는 배만 봐도 반갑다

“결국 나는 매를 맞는구나. 그렇지만 이 초라한 몰골에 나조차 으하하하 우습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라며 자탄한다.

한 푼 없는 건달은 여행마저 사치다. 백구과득(白駒過隙)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있다. 흰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으로,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음을 이르는 말이다.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떨릴 때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더 늙어서 거동조차 힘든 상황이 닥친다면 그로부터 여행은 그야말로 화중지병(畫中之餠)이 되고 만다.

아무튼 제주에 가서 1박 한 뒤 맞을 내일은 광복절이자 말복이다. 우리를 그토록 지독스레 괴롭혔던 폭염에서도 비로소 해방될 듯싶어 참 반갑다. 말복 다음으로는 처서(處暑)가 다가온다. 불현듯 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밖에 나가기 전 주춧돌(礎)에 습기(潤)가 젖어 있으면 비가 내릴 징조이니 미리 우산(傘)을 준비(張)하라는 뜻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빠짐없는 행장(行裝)을 꾸리라는 의미에도 부합된다.

추엽상전락춘화우후홍(秋葉霜前落春花雨後紅)은 ‘가을 잎은 서리 앞에서 떨어지고, 봄꽃은 비 온 뒤에 붉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계절은 그만큼 빠르다. 우리네 인생처럼 그렇게.

어쨌든 여행은 오늘을 알차게 채우는 과정이다. 제주에 다녀와서는 제법 두툼한 가을옷도 준비하고 볼 일이다.

바다를 가르는 용감한 사나이
바다를 가르는 용감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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