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조선대학교

허난성 체육국 간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운동과 접할 수 있었고, 처음에는 남들보다 큰 키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들어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11살의 꿔 윤페이가 체육관에서 농구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허난성에는 국가대표팀 태권도 코치가 어린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각 학교마다 체육관을 둘러보며 대상을 물색 중이었다. 마침 농구 연습을 하던 꿔 윤페이의 모습이 코치의 눈에 들어왔다. 긴 팔다리를 사용해서 쉴새없이 달리며 강한 슛을 쏘는 모습에 코치는 꿔 윤페이를 주목하게 되었고, 그녀는 농구 대신 태권도 선수로의 길을 걷게 된다.
같은 해 꿔 윤페이는 코치의 권유로 곧바로 베이징 체육대학교에 특별히 마련된 태권도 팀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태권도 선수로서 유연한 몸놀림과 강한 킥을 구사했으며, 학습 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180cm가 넘는 장신을 이용해 푸싱 킥, 아래 찌르기 등의 어려운 기술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냈다. 그렇게 태권도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2006년 그녀는 마침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녀는 첫 국제대회인 2006년 세계 청소년 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63kg이하 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8년에는 체급을 바꿔 아시아 태권도 선수권대회 여자 67kg이하 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2008년 아시아 태권도 선수권대회 대회 2일째였다. 여자 67kg이하 급 결승전에서 꿔 윤페이의 점수가 계속 앞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라운드 종료 17초 전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는 바람에 꿔 윤페이는 상대방의 오른쪽 무릎 킥을 맞고 부상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경기를 리드하며 금메달을 땄다. 부상에 대해서도 그녀는 오히려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경기 중에 부상을 입는 것은 태권도 선수의 일상이다. 경기 중에 과도하게 긴장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마지막 대항이 지나치게 격렬해서 다리를 다치게 됐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후 꿔 윤페이는 태권도 여자 67kg 이하 급으로 체급을 고정하고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오고 있다. 2009년 코펜하겐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2년 뒤 한국 경주에서 열린 2011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는 당당하게 은메달을 따내며 설욕전에 성공했다.
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번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1년 센젠 유니버시아드에서도 여자 67kg 이하 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꿔 윤페이는 태권도 여자 67kg 이하 급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지난 센젠 유니버시아드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인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륙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태권도 대표팀의 간판스타로서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넘어 내년 리우 올림픽까지 세계로 뻗어나갈 그녀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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