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 의리의 사나이’ 왕년의 휴머니스트 기자에게 묻다, 전 중앙일보 중부사업본부장 전종구
‘추진력, 의리의 사나이’ 왕년의 휴머니스트 기자에게 묻다, 전 중앙일보 중부사업본부장 전종구
  • 정칠임
  • 승인 2022.07.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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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구 대표
전종구 대표

전종구, 전 중앙일보 사업본부장. 그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추진력, 의리의 사나이’라 일컬어지고, 신의와 인연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고시보다 어렵다던 중앙일보 공채 14기로 입사해 사회부 기자 5년, 스포츠기자 15년, 중부사업본부(대전‧충남)장으로 10년, 총 30여 년 기자 생활했다. 중앙무대를 누리다 불현듯 대전 지역으로 내려와 중량감 있는 언론인으로서 지역 발전의 구심점이 돼 주었다.

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물으니 기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보다는, 좌충우돌 병아리 기자 시절의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2020년 5월 중앙일보사우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옛 사옥 앞에서 운영위원들과 함께
2020년 5월 중앙일보사우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옛 사옥 앞에서 운영위원들과 함께

기자 시절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 3

1. “네가 휴머니스트냐?” / 노수복 위안부 할머니 취재기

1982년 한 방송사 주관 이산가족 찾기가 한참 TV 방송을 타고 난 후다. 싱가포르 특파원으로 근무 중인 그에게 취재 토스가 왔다. 방콕 대사관을 찾은 노수복 할머니가 남동생(노수만)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취재하다 보니 일제 강점기, 우물가에서 일본 경찰에 납치돼 정신대로 끌려가 갖은 지옥을 경험한 기구한 인생역정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할머니의 기막힌 인생 스토리 중심으로 기사를 써 회사에 제출했다. 당시 신문사 외신부장이 그가 써 보낸 1고(稿)를 받아보고는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 니가 무슨 휴머니스트냐! ‘정신대’를 포커스로 기사를 써야지! 이리 ‘야마(핵심)’를 못 잡고 주접을 떨어?”

데스크의 날벼락을 맞은 그는 당시 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태국 남동부의 핫차이로 다시 가 2박 3일간 밀착 취재를 다시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절했던 현장을 고발한 기사는 당시 중앙일보에 11회나 연재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각종 출판물에도 게재됐으며, 영화화하겠다는 제의도 빗발쳤다.

2. 애송이 스포츠기자, 올림픽 선수단장에 엉뚱한 질문 / ‘외상값 갚으라’는 전화 쇄도

1984년 LA 올림픽. 여자 양궁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국민들이 환호했다. 선수단장이 귀국해 인터뷰를 여는데, 회사에 양궁을 제대로 아는 기자가 없었다. 그는 사회부에 있다 체육부로 간 지 2년째 된 ‘애송이’ 체육기자였지만, 차출돼 언론 합동 방송 인터뷰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신문사를 대표해 질문했다.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거꾸로 달렸는데…?”

환호하는 국민들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요지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질문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데스크에 혼이 난 것은 기본이었고, 뉴스 화면에서 그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본 단골 술집에서 전화가 쇄도했다.

“전 기자! 외상값은 언제 갚을 거야?”

3. 사망자 영정(影幀) 들고 회사로 달리는 사회부 기자

그가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 시절, 하루 한 건씩 사망사고가 났는데 사회면에 실릴 사망자 얼굴 사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만큼 기자들 간에 사진 확보 경쟁도 치열했는데, 그는 고민 끝에 기지를 발휘했다. 항상 안 주머니에 부조금 봉투 대여섯 개를 준비해 다녔는데, 사건이 나면 안치 병원으로 바로 달려가 절절히 슬퍼하는 문상객이 됐다. 그리고는 고인의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영정 사진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 제가 얼른 수정해 오겠습니다!”

유족의 허락 하에 영정을 갖고 나온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중앙일보 사옥까지 내달렸고, 사진을 복사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는 이런 기지로 사진 특종을 여러 번 했는데 <중앙일보 30년사> 기념 책자에는 ‘영정 들고 다닌 기자’로 소개돼 사건 기자의 모범사례로 회자되기도 한다.

전종구 대표
전종구 대표

인생은 새옹지마, 인사고과 ‘C’가 고향 대전에 기여하는 계기 만들어 줘

그는 1992년 체육기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받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일장기를 지운 채 동아일보에 사진을 실은 이 기자의 용기를 길이고자 제정된 상이다. 국내, 200여 명의 체육기자 중 전문기자 한 사람을 선정, 시상하는 이 상을 수상한 그는 대외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취재로 최소 인원으로 최대의 원고를 써야 했던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피로에 찌들어 있던 그에게 신문사로부터 전해 받은 인사고과 ‘C’는 충격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그에게 내부 사정상 피치 못하게 ‘C’ 고과 대상자로 선택됐다는 사실을 전해줬다. 그는 이를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가 내 존재를 확인하자’며 전환점으로 활용했다.

2018년 역대 프로축구단 사장들 모임인 축맥회 회원들과 함께
2018년 역대 프로축구단 사장들 모임인 축맥회 회원들과 함께

중부사업본부장… 대전‧충청 지역 활성화위해 맹활약

그는 1996년 10월 충청취재반장으로 대전에 왔지만 2년 뒤 중부사업본부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기사 취재는 물론이고 신문 판매, 광고 유치, 전단 및 택배 섭외까지 총 5개 부문을 총괄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는 중부지역의 발행 부수를 대폭 늘였고, 광고 수익도 4~5배 신장시키는 등, 부가 수익을 눈부시게 냈다. 당시 홍석현 회장은 그의 탁월한 성과에 공개석상에서 ‘최고의 사원’이라는 극찬을 보냈고 특별보너스를 지급해 주기도 했다.

중부사업본부장직을 수행하는 중에 그는 지역의 현안과 문제점을 만나 고민했고, 행정가와 기업인들이 모여 지역 침체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모색하는 자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그는 당시 지역에 있던 대기업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했다.

“지역에서 돈만 버시지 말고, 지역 발전에 투자도 좀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대전 충청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우리 고장 기관장, 기업인 만남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개최됐고, 총 6회를 치렀는데, 그는 각급 기관장과 기업인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 사안 논의와 미래 밑그림을 그리는 멍석을 깐 셈이었다.

이후 그는 2006년 정년을 3년 남겨두고 신문사 퇴직을 선택했다. 주변의 권유에 힘입어 당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았고, 대전 중구청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고인이 되신 그의 선친이 못다 이룬 유훈을 받드는 의미도 있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었다.

백제문화제 참여차 방문한 공주 공산성 가교 앞에서 아내와 함께
백제문화제 참여차 방문한 공주 공산성 가교 앞에서 아내와 함께

목요언론인클럽 재출범 시 사무총장으로 동분서주

그는 사단법인 목요언론인 클럽 재출범의 일등 공신이다. 사단법인 등록을 위해서는 10년 이상 근속한 중견 기자 회원이 1백 명을 넘어야 했다. 클럽 창단 준비기에는 고작 34명으로 회원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그는 클럽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이민종 회장 체제의 사무총장을 맡아 밤낮없이 선배와 동료 및 후배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100명 이상의 회원 등록이 이루어져 목요언론인클럽은 2000년 대전시 산하 등록 사회단체가 됐다. 그는 이후 2012년 1월 클럽의 제21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목요언론인 클럽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강제 해직당한 기자들이 주축이 돼, 81년 해직 기자 친목회로 결성됐는데, 점점 현직 기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현재 클럽은 지역에서 언론문화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옛날의 언론은 지사적 성격이 많았다. 월급을 받는 생활인이기보다는 기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더 컸다. 지금은 1인 인터넷 매체를 포함해 신문 관련 매체가 9천여 개에 이르고, 기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기자직을 수행함에 있어 첫째로 요구되는 것이 기자의 신념과 혜안이다. 불나면 불구경하기보다는 소방본부를 쫓아가야 하는 게 기자의 혜안이다.”

문학지 등단 상패
문학지 등단 상패

목요언론인클럽… 지역 연결해 주는 중간자, 방향타 돼야

그는 목요언론인클럽이 지역사회, 주민, 공무원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중간자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목요언론인클럽이 지역의 비전을 내다보고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도 현실 생활을 피해 갈 수 없으니 경제적 홀로서기도 필수다. 상조 모임을 떠나서 다양한 부가 수익사업을 개척하라 주문했다.

“회비 의존 운영을 넘어 다양한 수익모델을 발굴해야 합니다. 기업체 등의 위촉을 받아 사보 위탁 제작 등의 수익모델을 찾고, 언론인회관, 언론문화재단 설립도 필요합니다. 지방자치단체나 타 기관과 협약해 연구‧용역 사업, 각종 회의나 세미나 개최 등 위탁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목요언론인 클럽이 선봉장이 돼야 합니다.”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사장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시즌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 대표이사(사장)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2000년 대전시티즌의 출범을 체육 전문기자로서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그는 대전의 월드컵경기장이 활성화되기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1.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선수들이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여 시민들에게 기쁜 활력을 주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아라.

2. 지역 출신인 선수를 발굴‧육성해야 한다.

3. 구단도 자급,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경기장 공간을 최대로 활용해 임대 등 부가‧과외 수익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

 

최근 그의 근황… ‘코로나’ 삶의 역설로 바라보자

중앙지 스포츠 전문기자로서 30여 개국, 100여 도시를 방문했고, 올림픽 3회, 월드컵 2회 취재, 수교 전의 모스크바와 중국을 다녀왔으며 북한도 기자로서는 최초로 방문 취재했다. 미국 언론재단 연수를 통해 다양한 견문을 넓히는 시간도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시절, 혈기 왕성하게 인생을 풍미하고, 이제 고희를 목전에 둔 그지만, 기자정신이 체화돼 습관으로 남았는지, 사무실 한편에서 메모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서너 권이나 뒤척여 내보였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못 살겠다는데, 저는 이런 시기가 오히려 요긴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시기에 두 가지에 매진했어요. 오고 가다 좋은 아이디어 등을 항상 메모했고, 몇 군데 지면에 칼럼을 썼으며 수필로 문단에 등단도 했습니다.”

지인이 보내주는 SNS상의 글이나 여러 매체에서 본 좋은 내용은 항상 발췌해 수첩에 필사한다는 그는 아직도 기자인지 모른다. ‘뉴스의 도매상’이라 불리는 연합뉴스(뉴스통신진흥회)의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라 주기적으로 서울 사무소를 방문한다.

현직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사회 친구와 동업해 운영하고 있는 ㈜맥스SNI 야구용품 제조회사와 그 직매장을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그의 일과다.

2018년 7월 필리핀 세부에서 가족여행 중
2018년 7월 필리핀 세부에서 가족여행 중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살았기에 만족하고 보람 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지족상락(知足常樂)’으로, 자기 분수를 알고 항상 즐겁게 사는 것이라 했다.

“인생, 돌아보면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살았기에 만족하고 보람 있습니다. 집안일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아내가 버티어 줘서 고맙지요.”

최근 일 중 보람된 건, 중앙일보 중부사업본부장 시절 같이 근무했던 동료 직원들이 현역 은퇴 후에도 성공리에 자기 영역을 찾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흐뭇해한다. 기자로 근무하며 주경야독해 다섯 명이 다 석·박사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새로 출범하는 대전시의 요직에 발탁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감개무량하다 했다.

귀여운 외손주 윤서와 예준
귀여운 외손주 윤서와 예준

그는 요즘 트롯 가수 임영웅의 노래의 열혈 팬이 됐다. 방송에서 우연히 접했는데 요즘은 그 가수의 노래를 찾아 듣는 즐거움이 소소하다. 더해 ‘하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일컫는 외손주 권윤서(10세), 예준(8살)의 방문이 가장 반갑고 그 재롱을 보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그의 ‘소확행’이라고 함박웃음 지었다.

한 생을 풍미했던 왕년의 ‘샤프했던’ 이 기자는 어느새 이슬 내린 머리카락으로 넉넉하고 훈훈한 할아버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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