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주광현칼럼] 늙은 호박이라니
[효산 주광현칼럼] 늙은 호박이라니
  • 고성중 기자회원
  • 승인 2015.07.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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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고성중 기자]  나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즉각 몸 어느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과민 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응은 아마 마흔 줄에 들어서부터가 아닌가 하는 희미한 기억을 갖고 있다.

국문학연구소장 주광현
한편으론 나에게 그런 나쁜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자들도 또한 나처럼 특이 체질이 아닌가 묻고 싶다. 물론 그분들은 성격이 무던하여 말이 맞고 틀리고 간에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러기에 나처럼 몸으로 느끼는 알레르기(Allergie)성 반응은 없을 테다.

어엿한 학력에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석학들이 틀린 말을 쓰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기가 무슨 말을 틀리게 했는지조차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보면 그네들도 분명 특이체질이 아닌가 싶다.

‘청둥호박’이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듣고 너무 생소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청둥호박’이 어떤 호박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 졌다. 국립국원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청둥호박’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청둥호박 : 「명사」『식물』 늙어서 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호박

위와 같이 ‘청둥호박’에 대한 풀이 중 ‘늙어서~’라고 서술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이 말을
‘익어서~’ 또는 ‘잘 익어서~’라고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또 마음에 상처가 된다.

왜 익은 과일(호박)을 ‘늙었다고 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런 점에서 마음에 앙금이 인다. 불만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일을 비롯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치에 맞지 않게 풀어놓은 낱말도 있다. 그런 낱말을 발견하면 즉시 댓글을 달아 보내지만 회신은 받지 못한다. 일방적인 약속으로 필요하면 댓글은 달되 회신은 해주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청둥호박’이란 말이 사전에 올라 있는 순우리말이지만 낯설거나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익은 호박’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2015년 7월 1일(수)이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성제훈 농학박사가 매일 쓰는 ‘우리말 편지’가 여느 날처럼 그날도 내 이메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편지에서 그날 당일의 편지를 쓴 후 2008년도에 보냈다는 편지 한통을 그 뒤에 붙여 보내왔다. 그 편지는 아래와 같이 내가 성 박사님께 보냈던 내용을 붙여 보냈기에 그 부분만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는 2008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늙은호박과 청둥호박]

중략~ 이 편지를 보시고,
주ㄱㅎ 님께서 아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늙은 호박'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호박은 열매채소의 한 가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열매채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보기를 들면, 가지, 오이, 호박, 수박, 참외, 딸기 등 참 많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다른 열매채소에 '늙은'이라는 관형사를 붙여 봅시다. 늙은 고추, 늙은 가지, 늙은 수박, 늙은 참외, 늙은 딸기…….자! 어떻습니까?

늙은 수박이나 늙은 참외를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요? 왜 하필이면 호박에만 ‘늙은 호박’이라 했을까요? 이래서는 안 되겠지요? 한창 크고 있는 어린 호박은 '애호박'이라 부르고, 아직 익지 않은 큰 호박은 ‘풋 호박’이라 하며 풋 호박이 그 시기를 지나면 ‘늙은 호박’이 아니라 ‘익은 호박’이지요. 그러나 통상적으로 부를 때는 그냥 호박이요, 이를 애호박, 풋 호박, 익은 호박으로 구분지어 말할 때는 ‘늙은 호박’이라 하지 말고 ‘익은 호박’이라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근래 약 30여 년 이후에 호박 사러 다니는 사람이 먼저 이렇게 지칭했는지 아니면 방송국에서 이런 말이 먼저 나왔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지방에서는 옛날부터 이런 잘못된 지칭을 익은 호박에게 붙여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어쩌다가 우리말이 이렇게 저질로 변해 가고 있는지 장래가 암담합니다.

이하 줄임.
내가 쓴 내용이 ‘우리말 편지’에 공개된 것은 이상과 같다.
‘늙은 호박’이라는 말! 정말로 잘못된 말이다.
201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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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민기자협회 국문학 연구소장 주광현 010 9430-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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