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연속 파워블로거 인터뷰 '안녕하세요 권종상입니다.'
7년 연속 파워블로거 인터뷰 '안녕하세요 권종상입니다.'
  • 고성중 기자회원
  • 승인 2015.06.27 2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인 미디어의 승리자 권종상 인터뷰 옮김
[7년 연속 파워블로그 자리를 지킨 권종상 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전직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시애틀에서 우체부 생활을 하고 계시는 ‘행복한 이민자’ 권종상님을 서면으로 인터뷰했습니다. 2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어떻게 지역사회의 없어서는 안 될 아이콘이 될 수 있었는지, 저 멀리 시애틀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와인과 시사 이야기는 무엇인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권종상님께 직접 들어봤습니다. 시애틀의 낭만과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이 가득한 인터뷰 함께하시죠.

▶ 시애틀에서의 우체부 생활, 뭔가 낭만적인데요. 어떠신가요?

즐겁습니다. 음... 저는 이 일을 '국가에서 돈을 지급하며 운동을 시켜주는 일'이라는 농담을 친구들에게 하곤 하는데,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곳에선 연방공무원으로서 나름 충분한 급여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1년에 최장 6주까지 유급 휴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고, 하루 일이 끝나면 제가 하고 싶은 많은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다는 것도 우체부 일의 장점입니다. 학교에 가서 강의도 듣고, 운동도 하고, 저녁 시간을 가족과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우체부 일이 주는 선물이지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사귀고, 그들과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한 지역에서 일을 오래 하게 되면 우체부는 단지 그 지역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커뮤니티의 작은 아이콘 하나가 됩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가 깊어지면서, 여기서 받는 사랑과 위안에 중독됩니다. 뜨거운 여름이면 굳이 물 한 병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고, 크리스마스 때는 우체통 안에 우체부를 위한 선물을 넣어 놓는 사람들도 많고요. 때로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것이 상쇄되는 이유는 바로 이 '관계'에서 오는 안락함과 고마움 때문입니다. 또, 많이 걷는 일이어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들을 정리하면 글감이 됩니다.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매우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된 이유와 우체부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아버지께서 1981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에 살고 계시는 친척들을 방문하신 후에 그 당시에 형제 초청 이민을 신청하셨고, 9년간의 대기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0년에 이민 허가가 떨어졌고, 그렇게 전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됐습니다.

미국에 와서 처음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던 중에 지역 한인 주간지에서 기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그러다가 한국일보 시애틀 지사로 옮겨 근무했고,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지사로 옮겨 근무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에 라디오 코리아와 미국의 소리 방송 등에서 근무했고, 뜻한 바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 크리미널 저스티스, 즉 경찰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 꼭 생각하는 것처럼 풀리진 않는 법이어서, 아내가 우체국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에 저도 어깨너머로 함께 공부하고, 아내가 우체국 시험을 치르던 날에 저도 함께 지원해서 시험을 쳤는데 이것도 합격이 됐고, 아이들이 당시에 너무 어려서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을 길렀고 정작 제가 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부모님께서는 식료품점을 경영하고 계셨는데, 저는 경찰에 지원해 시험에 합격했고, 발령 대기 기간이 뜻하지 않게 길어져 그동안에 가게를 운영하는 걸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그게 제 적성엔 안 맞았지요. 그러다가 우체국에서 시험 합격 통지가 왔고 인터뷰를 통해 채용이 확정돼 얼른 가게에서 탈출했습니다. 부모님껜 죄송한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부모님께서는 은퇴하셨고, 저도 이 일이 제 적성에 맞아 지금까지 우체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저는 우체부입니다.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것들이 제 블로그를 관통하는 주제인 '시사, 인문, 경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은 제게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하는 지역인 시애틀의 브로드웨이 지역은 시애틀에서도 가장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곳입니다. 비즈니스도 경쟁이 심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일단 인정받은 비즈니스들은 오래도록 살아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들의 비즈니스 부침 상태를 살펴보면 경제의 현실 같은 것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겠지요.


재미있는 건, 우편물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준다는 겁니다. 우편물 중에서 소포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소비가 어느 정도 활성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배달증명 편지들이 갑자기 늘었다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뜻합니다. 내가 배달하는 패션이나 와인 관련 잡지의 두께가 몇 달 동안 계속 엷어졌다면 광고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2013년 중순부터 그런 잡지들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졌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의 카탈로그 광고도 늘었고. 이런 식으로 경제 상황이나 사회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마음의 열쇠수리공이 된 우체부, 게일 할머니와의 추억

우체부로 일하다 보면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이 친절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기다리는 편지나 소포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바로 우체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의 게일 할머니는 좀 달랐습니다. 소포를 드리려고 문을 두드리면 항상 차가운 목소리로 ‘그냥 거기 놓고 가’라고 말씀하는 분이셨죠. 마음의 상처가 많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 분이셨어요. 그런데 그런 게일 할머니가 좌골 골절을 당해 아래층으로 우편물을 가지러 내려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때부터 제가 우편물을 할머니의 집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게 됐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게일 할머니도 점차 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첫인상이 마귀할멈 같던 게일 할머니가 오드리 헵번처럼 보일 때쯤, 결국 게일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후에 게일 할머니의 친구분이 ‘아무도 게일의 마음을 저만큼 열어준 이가 없었어. 가끔 게일이 그랬어. 조셉이 아니었다면, 아마 자기는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을 뻔했다고. 게일은 네가 우편물을 가져와서 말 붙여주고, 자기 말 들어줄 때가 지금까지 제일 행복했었대.’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이 사회에서 내가 이방인이 아닌, 커뮤니티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저는 이제 이 커뮤니티 안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스스로 실감했었습니다. 사람들 간의 정이라는 건,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합니다.

세상을 떠난 게일 할머니와의 추억

우체부로 일하다 보면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체부에게 친절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기다리는 편지나 ...

▶ 초기 블로그 주제는 ‘와인’ 이셨는데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우체부가 되기 전, 저는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술자리가 잦았고 어느 날 취재 자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렇게 술을 마시다간 죽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선가 와인이 그래도 몸에 좋다는 기사를 읽고,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와인 관련 인터넷 카페들에 가입하게 됐고, 여기서 작성하게 된 글들을 보관할 용도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정보가 늘어나고, 와인뿐 아니라 제 주변의 이야기들도 차곡차곡 기록하게 된 것이지요^^.


▶ 블로그 운영하면서 생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세요.

아무래도 방송 출연과 이를 계기로 해서 책을 낸 것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제 포스팅 중 '나는 성공한 이민자다!' 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읽게 된 KBS의 작가분께서 이곳으로 연락해 오셨습니다. 지금은 종방된 KBS 1TV <지구촌 네트워크,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를 찍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고민하다가 어차피 제 삶의 많은 부분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데 뭐 어떻겠는가 싶어서 응했고, 이 방송을 보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시애틀 우체부>라는 책을 펴내게 됐습니다.

원래 직업이 기자였던지라, 지금 무엇을 하든지 저 자신을 글쟁이라고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저로서는, 책을 내게 된 것은 분명히 큰 소원을 하나 이룬 것이었습니다. 블로그 때문에 방송을 타고 나서는 제가 지금 사는 동네의 마켓에서 장을 보던 다른 한인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인사도 해 오시고 해서 매스컴의 힘이 크구나 하는 실감을 했습니다.

▶ 본인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 사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제가 분명히 제 몫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내 존재 이유와 가치가 분명한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 많은 사람이 권종상님의 블로그를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보기보다는, 함께 같은 방향을 보아 주시는 분들이 조금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언론 환경을 제공했고, 이런 와중에서 '나는 꼼수다'에서 시작된 대안 언론의 붐은 지금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상실감을 대변해 주는 것이겠지요. 뉴스타파나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 같은 대안 매체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기성 언론들이 모든 사람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뉴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요? 만일 기성 언론들이 상식적 수준에 맞는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다면, 제 블로그가 말씀하신 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블로그가 되진 않았을 듯합니다.

▶ 미국에서 생활 중이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소홀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꾸준히 관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오히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1980-9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회적 격변기를 겪고 지켜봤기 때문에 그런 면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6월 항쟁을 직접 제 눈으로 지켜봤고, 거기서 느꼈던 열기가 제게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되거든요. 그리고 미국에 왔어요. 두 개의 다른 사회를 겪는다는 것, 홍세화 선생님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주제들이, 어떤 경로든 다른 사회에서 살게 된 저도 비슷하게 그런 감정을 겪었던 것 같고, 한국 사회가 서구 사회처럼 더욱 상식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저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동포사회 매체에서 기자로 10년 동안 일했던 것도 그런 관심을 계속해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시애틀에서 바라본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일단 정치라는 쪽으로 국한해서 보자면, 국내의 정치 상황을 둘러싼 이전투구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박한 정세변화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어요. 최근의 미국과 일본의 급속한 관계 개선 속에서 한국은 찬밥이 되어가고 있고, 국익이라는 면을 보면 오히려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지금보다 더 가까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분단의 상황이 우리가 진짜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우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도 들고요.
인터넷을 통해서만 바라본다는 한계는 존재하지만, 한국 사회는 결국 정치에 대한 절망이 개개인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만을 믿는 이기적인 면들도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사회를 더 각박하게 만드는 게 보이기도 하고... 정치란 것은 결국 한 나라가 나가는 방향을 규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견제해야 하는데, 분단이라는 상황과 맞물린 지금 한국 사회의 구태의연함과 봉건성은 우리가 진짜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걱정되기도 합니다.

▶ (다시 와인으로 돌아가서) 이제까지 접해본 와인의 종류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미국 제2의 와인 산지에 살다 보니 - 제가 사는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아 주에 이어 두 번째로 와인 생산량이 많은 지역입니다 -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되도록 중저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품질이 훌륭한 와인들을 고르는 감식안 같은 것을 나름으로 갖게 됐지요. 와인이 삶의 열정의 한 원천인 까닭에 굳이 지금도 이걸로 학위를 딸 생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관련 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고요.


학교에서 스페인 소믈리에와 함께 두오로 와인을 시음하다

미국의 대학, 그것도 지역 사회를 위한 대학인 커뮤니티 칼리지의 실용성에 대해서는 늘 느끼는 거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미국을 움직이는 원동력...

와인이란 술이 재미있는 것이, 조금 더 알고서 마시면 그만큼 더 깊은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술이란 겁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일일이 세기 힘든 종류의 와인을 마셨고, 그 와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와인의 세계는 워낙 넓고, 아직도 마셔봐야 할 와인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사는 워싱턴주에서 생산된 와인들도 다 마셔보지 못했고, 똑같은 양조장에서 나온 똑같은 와인도 병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쟁이'들의 격언도 있는데... 하하. 아직 멀었다 싶습니다.

▶ 때와 장소에 따라 즐기는 와인의 종류가 다르신지 궁금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무엇이며 주로 언제 와인을 즐기시나요?

아무래도 뜻 깊은 자리엔 나름으로 뜻 깊은 와인들을, 그리고 편안한 자리에선 편안한 와인을 즐긴다... 고 말씀 드리면 될까요? 그 자리와 상황에 맞는 와인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자리에 맞는 와인을 고르는 걸 삶의 하나의 즐거움으로 알고 있지요. 제일 좋아하는 와인을 딱 짚어 말하기가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그리고 어떤 와인이든, 어울리는 음식에 따라서 '최고의 와인'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은 다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편안하게 마시는 와인은 오히려 결정하기가 쉽네요. 이곳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인 샤토 생 미셸의 리즐링 품종 와인은 어느 자리에 내놓아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저렴한 가격(6달러 정도)으로 약간의 달콤함이 감도는, 여성들도 좋아하는 와인이지만, 좋은 와인이 갖춰야 할 풍부한 산도와 향기도 다 갖춘 와인이지요. 역시 그런 관점에서, 레드 와인으로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콜롬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에스테이츠 카버네 소비뇽이나 멀로 같은 걸 좋아합니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월등한 와인들이고, 어느 자리에나 편안하지요.

▶ 와인이나 시사를 주제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웃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와인을 주제로 파워블로거가 되고 싶어하신다면 아무래도 많이 마셔야 하겠지요 ^^; 그렇지만, 주제를 갖고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즉, 내가 마시는 와인들의 범위를 축소하고 더 깊게 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와인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를 주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밭, 토양, 기후, 포도 키우는 방법, 양조 방법, 보관 방법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중 한 가지를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고, 와인이 생산되는 다양한 지역 중 하나를 선택해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미국 와인, 그것도 워싱턴 주의 와인에 대해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산지에 살기 때문에 주제를 좁혀 내기가 비교적 쉬웠던 거지요.

반면, 시사에 대해서 알려면 아무래도 많이 읽어야 하겠지요. 신문, 잡지, 그리고 다양한 책들을 읽고, 그것을 내 생각으로 소화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길 드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 바라볼 때, 그것을 기계적으로 숫자로만 파악하는 것보다는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해보다는 공감의 시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가슴에서 소화된 글을 써 보시길 권합니다.


▶ 블로그, 세상을 보는 창

블로그는 세상을 향해 여는 제 창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제게, 블로그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임과 동시에, 제 블로그의 독자들에게는 거꾸로 미국에 25년째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이 될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이 창을 통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