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과 화가
무등산과 화가
  • 한국시민기자협회
  • 승인 2015.06.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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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그림 작자미상‘무등산도’

광주·전남출신 화가로 무등산을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작가가 있을까. 언제 어디서 바라보아도 넉넉하고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 최근 작고한 광주 출신 시인 이성부는 그의 시 ‘무등산’에서 이렇게 썼다.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기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로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
무등산은 그림으로 노래로 시로 다시 태어나면서 광주의 자존심으로 우뚝 서 있다.

▲ 작자미상, 무등산도(영남대 박물관 소장)

‘무등산’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세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채색화 ‘무등산도(62×103cm)’이다. 이 작품은 현재 영남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원효사·증심사·약사암·서석·입석·광석·풍혈대·사인봉·상봉 등이 표기돼 있다.
1950년대 이후 이른바 현대회화로서 무등산을 즐겨 그린 작가는 서양화가 오지호 강연균 박상섭 김준호 이강하, 한국화가 박행보 박종석 등이다. 이밖에도 김영태 조규일 최영훈 등도 무등산을 즐겨 그린 작가들이다.
한국 인상파의 거목으로 평가되는 이 고장 출신의 서양화가 오지호(1905~1982)화백도 ‘무등산’(33.5×24.5cm·1977)을 화폭에 담았다. 말년에도 표현주의 화풍으로 한국의 빛과 자연을 화폭에 담았던 그는 청회색 무등산을 남겨 평생을 지켜온 고향에 대한 화가로서의 애정을 드러냈다.

▲ 박상섭 作, 무등산

무등산 작가로 부를 정도로 무등산 그림에 탐닉한 작가는 서양화가 고 박상섭(1935~2009)과 서양화가 김준호다. 박상섭은 주로 ‘무등산의 사계’를 즐겨 그렸다. 하나의 화면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러한 풍경은 광주의 상징으로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1980년대 이후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무등산을 즐겨 그렸다. 광주시청 3층 비즈니스룸에 걸린 1200호짜리 ‘무등산 사계’는 그림 하단부에는 철쭉이 만발해 있고 산 정상에는 흰 눈이 덮여있다.

▲ 김준호 作, 무등서설

박상섭 화백이 실경을 중심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무등산을 그렸다면 김준호(72)는 무등산 실경으로 유명하다. 서양화가로서 유일하게 무등산 테마전을 갖기도 했던 김씨는 무등산을 발로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등산 원경은 물론 서석대와 입석대, 그리고 담양 지실마을에서 본 무등산 등 그야말로 무등산의 ‘속살’을 파헤쳐 계절의 변화에 따른 섬세하고 오묘한 아름다움을 그만의 독특한 빛깔로 빚어냈다.

▲ 강연균 作, 무등, 1995

서양화가 강연균의 무등산 사랑도 남다르다. 수채화를 고집해온 작가이지만 무등산 대작은 유화로 그렸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현재 화순 남광주 컨트리클럽에 걸린 1000호 대작 무등산이다. 또 하나의 작품이 광주은행 본점 2층 로비에 걸린 ‘무등만설(420×240cm, 1997)’로 원효사쪽에서 정상을 바라본 유연한 능선과 갈매빛 산등성이, 설경을 담았다.

▲ 이강하 作, 여명의 태평소, 1992

서양화가 고 이강하(1952~2008)도 무등산 작가로 부를 수 있다. 대학원 재학시절 탱화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던 작가는 무등의 실경이 아니라 무등산 중봉에 오방색 천을 깔고 그 위에 벌거벗은 여인을 배치하는 등 무등산을 샤만이즘의 이미지로 재탄생시켰다. 현세와 내세를 잇는 신앙적 공간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그의 1990년작 ‘무등산’은 중봉에서 천제단을 바라보는 무등산을 배경으로 3명의 누드 여인이 탱화문양의 비단길 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조일규 作, 무등산 설경, 1990

서양화가 김영태의 붉은 ‘무등산’ 최영훈의 금빛 ‘무등산’ 조규일의 ‘무등설경’ 등 각기 다른 색채와 형태로 무등산에 대한 경의를 담아냈다.
특히 광주시립미술관소장의 조규일 작 ‘무등산 설경’은 웅장한 산세가 장엄미를 더한다.
한국화가로서 무등산을 즐겨 그린 작가는 금봉 박행보, 박종석 등이다. 박행보는 대작보다는 ‘무등산 일우’처럼 무등산의 한 귀퉁이를 회화적으로 풀어내기도 했으며 ‘입석대’ ‘무등산 춘설’ 등은 실경으로 묘사해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 박종석 作, 바람, 번뇌 그리고 향기, 2011

박종석은 화가로서 히말라야를 수차례 등정한 알피니스트로서 ‘어머니의 산’ 무등산의 초상(?)을 그려 지난 2010년 ‘산외산 무등산전’(山外山 無等山展)이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무등산자락에서 태어나 그 곁에 살면서 삶의 일부로 체화(體化)한 무등산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한 작품 30여점을 선보였다.
그는 한지에 그린 수묵담채에서부터 보성 삼베지에 그린 채색화에 이르기까지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다양한 방법들을 총동원해 무등산을 형상화 했다. 그는 광주와 담양-화순을 잇는 무등산 자락의 무돌길이 열리자 그 길을 직접 걸으며 명품으로 사랑받는 무돌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광주비엔날레 로고의 소재도 무등산이다. 또 광주시청 1층 로비 정면 벽면에 설치된 대형 미술장식품도 무등산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 고장 출신 작가가 아닌 김진란·한원택씨가 그렸다. ‘레이 오브 광주(Ray of Gwangju)’로 이름붙여진 이 작품은 38m×11m 크기의 대작이다.
지난 2004년 청사 개청에 맞춰 공모한 작품으로 무등산을 주요 테마로 하면서 빛의 움직임에 따라 빨강, 녹색, 파랑의 3겹의 광섬유가 빛과 함께 꿈틀거리며 웅혼한 기상을 표현한 현대적인 기법의 조형물이다. <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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