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最古의 중국집은 왕자관
현존 最古의 중국집은 왕자관
  • 한국시민기자협회
  • 승인 2015.06.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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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화흥루 덕의루 송죽루 아관원 아서원 영빈루 등 성업/6.25 직후 중흥루 천흥루 중화반점 영발원 예명식당 등 문열어
▲ 현존하는 중국집 왕자관

광주에는 짜장면집이 언제 생겼으며 어느 곳이 원조일까. 문화전문 포털사이트 문화통은 이러한 궁금증을 덜어보기 위해 학동 부흥반점의 창시자로 현재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왕소귀 선생, 영안반점 강헌본 사장, ‘광주 100년’의 저자 박선홍 선생 , 법무사 이홍수씨(86) 등 지역의 원로들을 만나 대략의 역사를 되짚었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어서 그들의 기억을 더듬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을 종합했다.
광주 최초의 청요리집(중국집)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대개 1920년대 중국의 내란을 피해 인천항을 거쳐 광주로 왔던 산동성 출신들이 변두리에 가게를 얻어 찐빵, 만두, 호떡 등의 빵집을 차렸기 때문에 중국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작은 구멍가게를 하다가 확장하여 짜장면과 우동집으로 기반을 잡아 청요리집으로 발전하였다. 때문에 광주에서 중국집이 오픈한 것은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왜정시대 광주의 대표적인 청요리집은 화흥루(충장로 5가), 덕의루 (금남로 4가), 송죽루 (황금동), 아관원 (광산동), 아서원(충장로 4가), 영빈루 (금남로 3가) 등이었다. 해방 후에는 충장로 1가의 왕자관과 황금동 파레스호텔 자리에 있었던 여명반점이 광주의 대표적인 중국 요리집이었다.
현재 광주에 남아 있는 중국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왕자관이다. 왕자관은 지금의 위치보다 충장로 쪽으로 커브에 있었고 건너편에 뉴욕제과가 있었다. 고흥에서 광주로 이거한 중국인 왕지의(王之義)가 1945년부터 운영했다. 이후 아들 왕가시가 조금 운영하다가 1972년 손문채 사장에게 넘겼다. 왕자관은 약 7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손사장의 친 조카인 왕진만(52)씨 내외가 열심히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원조는 확인이 어렵다. 이후 6.25 직후 5~6개의 중국집이 거의 동시에 오픈했는데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충장로 조흥은행 뒤에 있는 중흥루가 두 번째로, 연도는 1953년께로 보인다. 왕수지 형제가 운영했는데 어찌나 미남이었든지 아주머니 손님들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당시 한중일보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 식당을 즐겨 이용한 안종일 전 광주시교육감은 "두 형제가 어찌나 근사하고 멋있든지 늘 만원이었다."고 회고한다.
중흥루와 거의 같은 시기에 천흥루란 중국집이 충파 건너편에 있었는데 중앙로가 개설되면서 철거되고 말았다. 창업자는 두학진씨이고 이후 손문두-손영관씨가 운영하다 철거되면서 사라졌다.
그 다음이 월산동 중화반점(대표 필서제)인데 1953년 빵집을 오픈했다가 3년 뒤 중국집으로 바꿨다. 월산동 파출소 옆에서 시작해 서동, 길 건너 양동, 또 길 건너 월산동에서 2001년까지 48년간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둘째 아들이 2006년 봉선동에서 만리성을 운영하고 있다

▲ 충장로4가 중흥루가 있던 자리(좌)와 충장로 5가 대흥반점(우)

그 다음이 예명반점인데 1955년께 현재의 황금동 파레스호텔 자리에 있었다. 창업주는 중국인 곡소증(曲紹證)씨이고 그 아들이 몇 년간 운영하다 한국인에게 넘겼다. 한때 한정식집으로 운영되다 화재가 나는 바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레스 호텔이 지어졌다. 당시 예명반점은 충장로에서 천변 쪽으로 가는 길목에도 입구가 있었고 지금의 호텔정문 쪽에도 입구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좋은 정원수가 있는 멋진 식당이었다.
임동의 영발원은 1956년에 문을 열었다. 현재의 주인인 장경발씨(56)의 아버지 장덕충 씨가 운영하다 아들에게 넘겼는데 아들이 중국식당 일을 배운지도 35년이 지났다. 또 손자 장보원씨가 호텔조리과를 공부해 3대 가업을 잇기 위해 학습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중국집으로는 왕자관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황금동 미국 공보원 옆에 춘화루가 생겼다. 중국인 이운래씨가 운영했는데 얼마 후에 전남매일신문(현 남해개발사옥) 옆으로 옮겼다가 옛 전남도청 옆 대도호텔 건너편으로 이전하면서 동화반점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인도 바뀌었다.

▲ 충장로 5가 구역전통에 있었던 화흥루. 1940년께 지어진 건물이다.

충장로 5가 제일반점은 1960년대 초에 생겼다. 중국인 강연선씨(80)가 시작했는데 현재 영안반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헌본(67.姜憲本) 사장의 숙부이다. 제일반점은 현재 가족이 아닌 중국인 갈춘태씨가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한때는 광주지역 유명 인사들이 드나들었던 집이다.
학동시장 입구에 있는 부흥반점(復興飯店)은 1962년에 개업했다. 창업주 왕소귀씨가 운영하다 현재는 아들 왕조덕씨가 2대 가업을 잇고 있다. 왕소귀씨는 광주에 사는 동안 화교협회 사무국장을 맡은 바 있어 중국집 역사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다. 옛 전남도청 옆에 있던 복생관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60년대 후반에 개업했던 복생관은 왕면손씨가 창업해 운영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왕씨의 딸 왕수연씨가 장무화씨와 결혼해 1980년 5월 영성원의 문을 열었다. 영성원은 90년대 남동 남도 인쇄골목으로 이전했다가 현재 동구청 옆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60년대 초에 생겼다 없어진 중국집 가운데 중앙반점이 있다. 지금의 대인시장 건너편 감초한의원 자리에 있었는데 서씨가 운영하다 공씨에게 넘겼고 80년대 초 문을 닫았다. 계림동 일대, 동문다리 부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또 같은 시기에 대성약국 건너편에 치미루란 식당도 있었다. 주번관씨가 90년대 중반까지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70년대 충장로 5가에 부흥반점(富興飯店)이란 곳도 있었는데 충청도에서 광주로 이거한 중국인인 신태장씨가 주인이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다 중국집을 운영했다. 뒤에 구동시장 근처로 옮겼는데 지금의 박치과 자리다.

▲ 충장로 5가 제일반점(위)과 덕흥루가 있던 금남로3가 한성회관 옆(아래)

영안반점은 1973년 현재의 강헌본 사장과 형님인 목본(睦本)씨가 시작했으나 형은 미국으로 떠나고 강씨가 4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영안반점은 원래 강휘선씨가 영안상점이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본전다방 1층에 중국집 문을 열었다. 현재 신세계백화점에서 중국식당 차이나타운을 운영하고 있는 강수화(46) 씨가 강헌본 사장의 아들로 3대 가업을 잇고 있다. 금남로 5가의 대흥반점은 75년도에 문을 열었다. 임광영씨가 운영하다 현재는 아들인 임풍성씨에게 넘겨주었다.

전남도청 옆 최춘산부인과에서 구 시청 쪽으로 가는 길에는 화흥반점이, 장동 로타리 쪽에서 전남여고 쪽으로 가는 길에는 연화반점이 있었다. 이 일대에서 계림동에 이르는 땅은 채소밭이 많았는데 비닐하우스 재배기술이 있는 중국인들이 채소를 길러 중국식당에 공급했다. 현재 계림동에 있는 화교학교도 중국인들이 부지를 희사해 학교를 세운 곳이다.
한편, 한국인이 운영했던 중국식당으로는 광주학생회관 입구에 있었던 광일각이 대표적이다. 왕자관 지배인 출신의 조중호씨가 운영하다 1980년대 초 문을 닫았다. 1980년대 들어서는 1982년 신락원(新樂園) 이 충장로 4가에 문을 열어 현재 운림동에도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후 상무지구와 첨단지구가 생기면서 비교적 규모가 있는 중국식당들이 오픈했으나 역사는 일천하다.
중국집 최대의 전성기는 1970년대라고 말한다. 지금은 호텔에서 선을 보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춘남녀들도 중국식당에서 데이트를 즐겼는데 한때 중국식당에는 ‘뽀이’들이 방안을 훔쳐보기 위해 벽에 뚫어놓은 구멍이 많았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식집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빼갈’ 대신 ‘정종대포’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중국식당이 사양화되기 시작한다. 1988년 올림픽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동차 문화가 급속도 번지면서 야외로 나가는 바람에 중국식당은 더욱 어려워진다. 2000년대는 이른바 피자나 스파게티, 퓨전음식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젊은이들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면서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영안반점 강헌본 사장은 "현재의 중국식당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장래도 불투명하다"고 진단한다. 우선 전라도는 좋은 한정식이 있어 경쟁대상이 되지 못하고 갈수록 튀긴 음식이나 고기를 선호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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