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 금산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한 태공당 송월주 큰스님이 지난 22일 금산사 만월당에서 열반한 가운데, 26일 빈소가 마련된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영결식이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명종(5타), 개식, 헌다, 헌향, 생전육성법문, 영결사(총무원장 원행스님), 법어(종정 진제 대종사), 추도사, 조사, 추모의 글,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만장을 앞세운 운구행렬이 큰스님이 활동했던 금산사 내 대적광전과 미륵전을 돌아 다비장이 마련된 연화대에 도착,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다비식이 거행됐다.
이날, 운구행렬 옆에서 눈물을 훔치는 등 흐느낌으로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불자들도 눈에 띄었다.
장례기간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대권주자(이재명, 이낙연, 윤석열, 최재형, 정세균, 추미애, 김두관, 박용진)들과 불교계 등 각계에서 조문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단체들의 애도 메시지도 이어졌다. 특히, 5.18 단체인 기념재단과 민주유공자유족회,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는 "전두환 군부정권 찬양 지시를 거부한 월주 스님을 추모한다"고 밝혔다.
월주(月珠) 큰스님(속명 송현섭)은 1935년 정읍 산외면에서 부친 송영조씨와 모친 최종을씨 사이에서 5남 4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산외초등학교와 서울중동중학교, 정읍농고(현 정읍제일고)를 졸업했다. 1954년 친구를 따라간 속리산 법주사에서 승려되기로 결심,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56년 구례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27살에 금산사 주지(1961-1974), 전북 종무원장, 금산중,고등학교 이사장,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당시 전두환 군부정권 지지성명 거부, 무장군인 사찰 난입, 스님들 불법 연행, 10. 27 법난 일으킴), 총무원장 강제 사직, 미국에서 3년간 체류.
귀국 후, 김제 금산사와 서울 영화사에서 활동,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 경실련 공동대표,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우리민족서로돕기 이사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장, (사)지구촌공생회 이사장 등 불교 정화운동과 사회참여운동, 빈곤퇴치운동 등 다양한 자비심 활동을 실천했다.
국민훈장 모란장, 무궁화장 수상, 캄보디아 국왕 훈장 수훈, 제1회 민세(안제홍 선생)상 수상, 만해대상(평화부문), 여의대상 길봉사상 등을 수상했다.
송월주 큰스님은 자신의 법문집과 회고록 등에서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자비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타인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자(慈)와 타인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비(悲)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베푸는 것이요.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 나에게 행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 말씀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이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과학실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엔돌핀이 나와서 즐거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서로 속이지 않으며, 어디서나 어느 누구도 멸시하지 않으며, 성내거나 악의를 가지고 다른 존재를 괴롭히지 않기를...마치 홀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다해 보호하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기르기를..."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사회에 되돌려 주어 그 은혜를 값아야 한다는 빌게이츠 갑부의 철학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부, 즉 보시는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이를 기쁘게 하는 보살행이요, 우리의 생명이 하나임을 실천하는 공덕행입니다.
존재의 근원에서 본다면 우리의 존재는 무아이며 무소유입니다. 하지만 물질에 집착하는 관념, 즉 대상물에 대한 집착이 자연과 인간을 둘로 만들고 너와 나를 구분하여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의 본래 성품, 우주의 본래 성품은 본래 무차별이며 평등합니다. 이러한 존재의 본래 성품을 지구촌에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그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자비가 곧 부처님이며, 사랑이 곧 하나님입니다. 자비와 사랑이 없는 삶은 허무이며 존재의 의미가 없는 몽상과도 같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도 지혜의 자리를 알면, 나와 너라는 상대적인 차별상과 분별망상이 모두 사라집니다.
지금 배고프고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에게 마음을 갈고 닦아서 진리를 깨달으라는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설법은, 그저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은 원래 지혜와 자비심, 측은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작은 나눔의 실천이 아름다운 인생을 여는 공생(共生)의 첫 출발점입니다.
불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에 기여해야 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와 이타의 종교임을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수행과 보살도의 실천은 둘이 아닙니다. 세간(世間)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마치 거북이에게서 털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 우리 모두가 같은 몸임을 깨달을 때 큰 자비심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 자비심을 내고 자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자비행(慈悲行)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비행으로써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자 불교의 사회적 존재 이유입니다.
구도의 본질은 자비행에 있습니다. 헐벗고 병든 이웃이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우물을 파서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고,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전쟁을 방지해 지구촌의 생명평화를 실현하는 일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와 사회에 회향하고 환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 욕망 충족과 출세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공부하는 이의 기본 자세입니다.
갈수록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경제난을 겪으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가난으로 허탈해 있는 국민들이 있습니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으로 갈등이 심하고, 세대 간 소통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극단적 대립을 지양하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접점이 우리 사회 이념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돼야 합니다.
화합과 중도를 지향하는 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정치지도력과 사회통합력으로 확대될 때, 우리 사회가 다소 혼란과 진통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국민통합과 국가의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10악업(惡業)을 짓는 사람보다 10선행(善行)을 행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을 때에 미륵 부처님께서 출현하십니다.
10악업은 ▲생명을 죽이는 것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 ▲부적절한 음행을 하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 ▲이간질을 하는 것 ▲상대방을 해치는 욕설을 하는 것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교묘히 꾸며서 말하는 것 ▲지나치게 탐내는 욕심 ▲자신의 뜻에 거슬린다 하여 노여워하고 화내는 것 ▲어리석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
또,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술은 게으름의 원인이 되고, 모든 잘못의 발단이며, 악의 근본이고, 현명함을 쫓아내고, 성스러움을 깨트리며, 도덕을 부수고 망령된 행위로 화를 부르는 근본이 되느리라" 했습니다.
불교계는 수행에 중점을 두다 보니 타 종교에 비해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리는 노력을 등한시했습니다. 자비행과 이타행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이 있거든 이웃과 사회를 위해 그 깨달음을 실천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잘 살아보세 대신 '올바르게 살아보세' 하는 정신운동이 필요합니다. 탐욕을 버리고 남을 배려하고 법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향식으로 하면 안 되고 자발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족하더라도 비교하지 않고, 이 정도면 낫지 않는가 라고 만족하면 행복한 겁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조문에 이어 영결식장에 조전을 보내왔다.
"월주 큰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구도의 삶과 이웃의 고통을 품어주는 이타행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신 스님의 입적이 안타깝습니다.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현대사였습니다. 민주주의 실현, 남북 평화, 양극화 해소, 환경보호, 국제 구호를 위해 앞장서셨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직접 광주를 방문하여 다친 시민과 군인을 보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셨습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어려울 때 김수환 추기경님, 강원룡 목사님과 함께 경제살리기와 실업 극복을 위해 애쓰신 모습은, 어려운 시기 종교지도자들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국민통합에 앞장서는 귀감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아프고 힘든 이웃을 보듬고 함께한다면, 우리 국민은 코로나의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큰스님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추모의 마음을 전합니다."
송월주 큰스님이 생전에 좋아했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최형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