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눈동자는 고요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빛만으로도 그녀는 특별했다.
‘지신무’ 너무 낯선 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는 온몸이 춤꾼의 기운으로 꽉 찼다.
과연 어느 장르의 예술일까 물음을 던지니 ‘원초적인 움직임을 다룬 행위예술’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그녀의 답. 짐작대로 여느 춤과는 결이 달랐다.

공연 사진속의 그녀는 삭발투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비주얼부터 춤의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고등학생 때 이미 EBS의 방송, 시 대표 육상 선수, 성인 극단 가입 등 학창시절부터 예인의 끼를 엿볼만한 설명구들을 나열해 보면 ‘지신무의 창시자 서승아’의 오늘을 이미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사뿐히 떼는 발길, 나풀거리는 손끝에 영혼을 담는 춤사위는 우리네 토속 정서를 담은 원초적인 말 ‘뭔가 씌인것 같다’는 말이 가장 근접할 것이다. 그만큼 혼을 쏟아 붓는 행위예술이다.
마음을 비우고, 무아의 상태에서 생명의 터전인 흙을 밟으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회귀 본성을 순수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이야기,
필연처럼 일본에서 만난 지신무의 스승, 12년간 삭발 투혼으로 영혼을 불러오는 예술가.
그녀의 이야기로 진정한 춤꾼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Q. 지신무부터 설명 듣고 싶어요…
지신무라는 이름은 아마 처음 들어보셨을 거에요. 제가 일본에서 스승님께 배우고 우리나라에서 정착시키면서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지신무는 땅을 밟는 춤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만든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님께서 2013년도에 ‘지신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지신무의 원류는 동양인의 춤을 만들고자 했던 일본분이 만든 행위예술인데 제가 일본에서 배우고 우리나라에서 토착화시켜 ‘서승아의 지신무’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영혼을 실은 춤사위의 기세에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오래 전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흙은 인간 삶의 바탕이었습니다. 우주만물을 주제하는 흙은 인간을 만들고, 자연을 만든 생명의 큰 어머니이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 순환의 과정을 밟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아의 상태에서 생명의 터전인 흙을 밟으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회귀 본성을 순수한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 땅의 풍요와 사랑과 평화 소통과 상생을 바라는 소원굿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이해가 더 쉬우실 겁니다.


지신무는 舞踏(무답), 일본식 발음으로 부토(BUTOH)라고 칭한다. 부토는 일본문화가 아닌 일본인 히지카다 다쯔미(부토의 창시자)님이 만든 움직임이다. 유럽에서는 BUTOH를 동양인의 움직임으로,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땅의 기운으로 움직이는 영혼의 춤이다. 지신무의 원류는 동양인의 춤을 만들고자 했던 일본분이 만든 움직임이다.
인천 돌체 극단 단원으로 1983년부터 연극을 했다. 성인극단이라 여고생 신분으로 극단에 가입하는 과정부터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극단에 가입하는 첫 번째 통과의례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연극의 세계는 가시밭길로 통하는데 35년 전 그 때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께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드렸다. 역정 내시는 아버지께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건 당연했다.
험난한 연극 세계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딸을 염려하는 마음은 알지만 이미 연극무대가 내 인생 무대라고 혼을 뺏긴 후라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서 몰래 찍어주신 도장이 내가 연극 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첫 시발점이 되었다.
인생 무대의 타이틀, 느닷없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이 거듭되면서 필연과 인연의 고리로 엮어진다.
일본에 가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1980년대 비누방울 공연이 막 시작됐을 때 첫 공연자 분과 그 분의 외국 공연자 친구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의식과 환경이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일본에 가기 전 그분이 나한테 건네준 한마디 말이 내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다른 세상으로 나갈 때는 목표를 정하지 말라. 그 곳에 가면 모르는 세상이 펼쳐질 거다”
나는 무작정 떠났다. 스케치북에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떠난 일본행이라 백지만 들고 간 그 길에서 오히려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스케치할 수 있었다.

일본, 새로운 출발의 결연한 의지로 삭발을 선택하다
탤런트 김영애 선배님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나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풋풋한 단발머리로 시선을 끌었던 무명의 연극배우였다. 일본으로 떠나는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비자 통과에 세 번이나 고배를 마시면서 일본행은 살얼음판을 걸었다.
비자 담당관이 일본어를 들이밀면서 읽어보라고 하는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그걸 읽을 줄 알면 왜 일본에 가느냐 가서 배우려고 비자 신청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 결연한 의지가 통했는지 비자에 통과하고 드디어 일본에 도착했다.
6개월 생활비를 준비했지만 마침 IMF와 맞닥뜨리면서 극심한 엔화 변동으로 두 달밖에 생활을 할 수 없어 랭귀지 코스를 밟으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도착하고 바로 삭발을 감행했다. 승부수를 걸었다는 다짐이기도 했고, 나의 여성성으로 불필요한 유혹이나 타협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상큼한 단발머리를 내 손으로 한 올 한 올 밀어낼 때는 그 심정을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거울에 비친 삭발한 나를 보고 애써 웃음 지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서승아 넌 자유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마음껏 해봐.”
하지만 처음부터 수월하지는 않았다. 삭발을 한 상태라 아르바이트 선택의 폭도 좁을 수밖에 없었다.

길 위에서 만난 지신무의 스승
백발을 질끈 묶은 초로의 기인,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던 그 분을 한순간에 마음에 담고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일본은 거리공연이 많다보니 공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나는 그 백발의 기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운명인가?
인연의 끈으로 그 분의 연습실을 찾게 되었고 그 분은 나를 앞에 두고 소리 없이 15분가량 춤을 추었다.
“이 춤이 바로 나의 명함이오.”
라고 말하던 그 기인은 바로 행위예술가였으며 땅을 밟는 춤을 처음 만든 일본 예술가였다.
나는 바로 넋을 잃고 빨려들어 춤을 배우게 되었고 그 분도 나에게 묻지도 않고 나는 그 분의 제자가 되었다. 운명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신무는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삼키고 나는 다시 거듭나서 지신무의 창시자가 되었다.
스승님께 5년 동안 전수받는 동안 언어의 장벽, 예민한 예술가의 직설화법, 물러섬 없는 나의 예술혼들이 뒤엉켜 무수한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전수받아야 했다. 5년 후 스승님의 유럽공연 스텝으로 참여하면서 나는 유럽에서 갈채와 환호를 받는 스승님의 춤에 숨이 막힐 만큼 매료되어 지신무는 나의 인생이 되었다. 유럽인의 넋을 빼놓고 우리는 돌아왔고 다시 내가 그 폴란드 무대에서 주역으로 지신무를 선보였다. 스승님이 나의 스텝이 되었던 그 황홀한 무대의 기억은 내내 나의 저력이며 힘이 되고 있다.

지신무의 창시자, 서승아
한국에 돌아와 2005년 태안에서 열린 충남 버섯축제에 첫 무대를 올리고, 코로나 전까지 1년이면 5-6만 킬로를 달리며 전국의 무대를 누볐다. 아직은 낯선 춤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살풀이처럼 정형화된 춤을 만들어 ‘지신무’만의 독창성을 계승할 사명을 갖고 있다. 땅의 기운으로 영혼을 살리는 행위예술, 서승아 선생의 춤사위로 녹아드는 그 예술의 경지가 조금 더 보편적인 힘을 갖기를 바란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춤사위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무대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전통은 오래된 기억이 아니라 ‘지금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온다면 우리가 서승아 선생의 예술혼에 흠뻑 취하는 운 좋은 사람이 될 것은 自明(자명)하다.


*** 3년간 태국 방콕스트리트쇼 공연, 한국팀 매니저
*** 목포세계마당극페스티벌 추진위원
2017 순천 푸드아트페스티벌 거리공연 프로그램 연출·감독
충주 전국체전 거리공연 프로그램 연출·감독
목포세계마당극페스티벌 추진위원
* 2018 평창올림픽 문화올림픽 고성통일전망대 공연(남북평화의 메아리)
* 김제 소녀상 제막공연
* 광주 아시아 마임 페스티벌 프로그래머
* 순천푸드아트페스티벌 거리공연 연출·감독
* 장수 한우랑 사과랑 마임축제 프로그램기획
* 필리핀 비간, 마카오, 오키나와, 한국 문화교류공연, 워크샵, 세미나
* 인천 “소청도를품다 소청도 주민워크샵” 위령제 공연
* 국제 마카오퍼레이드 공연
2020 노벨타임스 주관 아시아명인으로 선정
- 8년간 서울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디페스타 프로그래머
- 일본 요코하마, 홋카이도, 삿뽀로, 도쿄 경제대학, 폴란드 8개 도시, 이탈리아, 라오스, 마카오, 오키나와 등 다수의 국내·외 공연
연간 30회 이상 공연 연출·기획
- 한국최초 부토무용가
- 지신무극단 천공요람 대표
- 예술공장 대표
- 부토(땅을 밟는 춤) = 지신무(땅을 밟는 춤)
- 지신무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