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경은 총 두 곡이 수록된 자신의 새 싱글에 바로 그 ‘감정둔마'를 앞세웠다. 앨범의 표제곡인 ‘감정둔마', ‘랑데부' 그리고 ‘신해경'이라는 세 글자를 종이가 닳도록 몇 번이나 힘주어 덧쓰는 듯한 두 곡을 이어 듣고 있으면, 지난 다소간의 고요가 그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느끼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게 사라진 황무지에 부는 듯한 허망한 바람 소리로 시작되는 ‘감정둔마'는 이제는 익숙해진, 무의식 저 너머에서 천천히 밀려오는 신해경식 웅크림으로 출발한다. 신해경이 지난해 개인적으로 겪었던 정신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노래는 출발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길을 활짝 열어젖힌다. 눈 깜짝할 사이 돌풍으로 변해 노래 전체를 휘감는 여린 에너지는 노래가 진행되는 4분 여의 시간 동안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듣는 이를 쥐락펴락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현기증을 느끼려는 찰나, 이제는 한껏 친숙해진 우울로 듣는 이를 능숙하게 위로하는 ‘랑데부'가 손짓한다. 지금까지 그의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골 깊은 감정의 덩어리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잊고 살던 우리 안의 블루를 끝내 길어 올렸던 데뷔 앨범 [나의 가역반응] 이후 4년, 이 사람의 음악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란 이렇게나 변함이 없구나 새삼 놀랍다. 꿈과 몽상 사이에서 여전히 길을 잃은 사람이 같은 상처를 몇 번씩이나 후벼 파 만든 깊고 어두운 웅덩이 속에 체념처럼 몸을 맡겨 본다. 웅덩이는 생각보다 넓고 포근하다. 지긋지긋한 아픔이 드디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반복되는 아픔에 적응해버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둔해진 감각이 싫지만은 않다. 어떤 사람은 평생 이런 음악을 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이런 음악을 듣겠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타고난 나쁜 피를 향한 저주가 아닌, 이제는 이것이 나 자신이라는 걸 여전히 예민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안식이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푸른 빛. 신해경의 새 노래에서 그 푸르른 빛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