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에서 최초의 향약이 시작된 곳은 바로 김문발에 의한 부용정향약이다.
고려 말 도평의녹사 출신으로서 1386년(우왕 12) 전라도 원수를 따라 남원, 보성 등지에서 왜구를 격퇴한 공적이 있는 김문발은 고향에 돌아와서 부용정을 짓고 여씨 향약과 주자의 백록동 규약을 베풀어 풍속교화에 힘썼는데 이것이 광주 향약좌목의 유래가 된 것이다. 따라서 부용정은 광주의 향약 시행 장소로 매우 유서깊은 곳이다.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된 부용정은 칠석동 고싸움 전수관 앞 마당에 자리잡고 있으며 평야가 펼쳐져 있는 평지에 2단으로 대지를 고른 후 건립되었다. 기단은 네모막돌 바른층 쌓기로 되어있는데 좌우와 가운데 외엔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아 서민적이고 아주 정겹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장이고 연골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해 여름에는 무척 시원해서 당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흐뭇하다.
부용정을 다녀간 사람들의 면면은 부용정에 걸린 수많은 편액을 보면 알수 있다. 양응정· 고경명· 이안눌· 박제형 등의 편액이 절로 시조 한 수를 읊조리게 한다. 부용정이라는 이름은 북송의 유학자요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이론을 창시한 주돈이가 꽃 중의 군자는 연꽃이라고 찬양한 수필 애련설에 담긴 뜻을 취하여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자녀를 데리고 부용정에 가보자. 그 옛날 사람들이 향약을 지키기위해 모이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교훈을 남길 것이다. 또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주좌(株座)가 평탄하지 않은 초석(礎石)을 사용해 덤벙덤벙 놓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덤벙주초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은 신기해할 것이다.
향약의 4대 덕목인 ‘착한 것은 서로 권한다는 덕업상권, 잘못된 것은 고쳐준다는 과실상규, 예의로써 서로 사귄다는 예속상교,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는 환난상휼’이 요즘 아이들의 가슴에 얼마나 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조상이 그랬듯이 우리도 물질문명 속에 병들고 문란해진 사회질서를 향약을 통해 바로잡아갔으면 하는 바람은 버릴 수가 없다./박정희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