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초대 주월 사령관을 지낸 고 채명신(1926∼2013) 예비역 중장이 생전 유언대로 파월 사병 묘역에 묻혔다. 국립 서울현충원에는 역대 대통령 세분 묘역, 그리고 국가유공자, 애국지사, 장군묘역 등 수많은 영령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특히나 현충원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파월전사자 묘역 맨 앞줄에 살아계신 영령들처럼 맨 앞줄에 꽃에 묻힌 큰 별이 보인다.
그가 바로 군인 정신을 실천에 옮기신 채명신 장군의 묘비가 그분의 철통 같은 반공정신과 국가관에 대한 신념들을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이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군인 정신이다. 그리고 군 기강이 해이해져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과연 이 나라의 방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6·25전쟁 당시 2사단 25연대 중대장, 유격대장, 7사단 5연대장, 3사단 참모장 및 22연대장으로서 수많은 전투에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채명신 장군 하면 6.25전쟁보다 먼저 베트남전을 떠올리게 된다. 초대 주월 한국 군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약 4년간 베트남전을 지휘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채명신 장군이 6.25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 파월전사자 묘역 맨앞줄에 뭍친 고 채명신장군의 묘
항일운동을 했던 부친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의 탄압대상이었던 그는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한 이후 중대장으로 송악산 전투와 태백산 게릴라 토벌전을 벌이다 6.25를 맞았다. 특히 1951년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을 이끌며 백골병단이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하고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연대장과 참모장을 지낸 그야말로 전장의 사나이 였다. 이후 베트남전에서도 월맹 공산군과 전투를 치름으로써 그는 평생을 공산주의자들과 싸운 군인으로 기록되었다.
▲ 고 채명신장군의 탄신일과 사망일자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해방 후 북한지역에 살면서 공산당을 직접 경험해 누구보다도 공산당의 실체를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평생을 공산당과 싸워 이 나라를 지키고 세계 평화수호에 이바지한 채명신 장군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참 군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고 채명신장군이 남긴 어휘 표지석
1965년 8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초창기 주월 한국 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베트남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용 전분투해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전 세계에 한국군의 용맹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1회), 화랑 무공훈장(1회), 충무 무공훈장(3회), 을지 무공훈장(2회), 국선장, 방위포장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