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숲길 나그네 되어 "시민정미화 글"
떡갈나무 숲길 나그네 되어 "시민정미화 글"
  • 한국시민기자협회
  • 승인 2010.11.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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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갈나무 숲길을 걷는다. 고갯길 하나를 다 내려가는데도 온통 떡갈나무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그 숲길에 늦은 가을 햇살이 부서진다. 고운 색깔로 물들어가는 떡갈나무를 눈에 담고 가자니 추억의 팝송으로 유명했던 ‘마을 어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걸어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노래와 ‘노란손수건’이란 글이 떠오른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어느 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한 남자가 형무소에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를 용서한다면 마을 어귀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두라고, 노란손수건이 안 보이면 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어디론지 가 버릴 거요라고 편지를 썼소.> 사연을 들은 승객들은 그 남자의 고향 마을이 다가오자 떡갈나무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이윽고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떡갈나무 가지에 휘날리고 떡갈나무아래에는 하루도 그가 잊어 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가 서 있었다는 이야기의 떡갈나무.

 옛날 사람들이 떡갈잎을 쪄 떡을 싸서 떡갈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나무. 걸어가는 숲길 위에 두툼하고 웬만한 아이얼굴만 떡갈나무 잎 하나가 땅위에 떨어진다. 떡갈나무가지를 떠난 잎들은 어디로 향해 가는지. 겨울을 준비하는 숲속짐승들의 두툼하고 따뜻한 털이 되고 서늘한 숲 흙길을 기어가던 보라금풍뎅이 집이 되어줄까? 여름내 짝을 찾아 분주했던 곤충들의 대를 이어줄 알집이 되어 주겠지. 그냥 어느 나무뿌리 곁에 잠들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연둣빛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할 거야.

 보슬거린 털이 수북한 각두 속 도토리열매는 떼구르르 굴러 굴러서 누구한테 갈까. 숲속동물들 배 부릴 겨울식량이 될 거야. 감춰둔 열매를 찾지 못한 어치의 둔함으로 부드러운 나뭇잎 흙속에 파묻혀 있다가 한그루의 아기떡갈나무로 탄생하여 잎이 무성히 자라면 꿈틀거리는 벌레들이 파 먹힌 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일이겠지.

 휘잉 깊어가는 가을소리를 내는 떡갈나무에게 외롭고 쓸쓸하다고 말 하면 떡갈나무는 슬픔에 찬 내 손바닥에 잎 하나 내려준다. 조금은 따뜻해질 거야. 위로하며 잎을 떨어뜨린다. 두툼한 나뭇잎 하나 감싸 쥔다. 숨어있던 마음속 물든 떡갈나무 잎 하나는 내 마음마저 따뜻하게 한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노래와 이야기. 떨어진 두툼한 잎과 열매는 숲속동물들 보금자리와 먹이로. 사람들이 가지고 다녔던 자연도시락으로, 애벌레에게 내어 준 상처 난 잎. 깊이 들여다보면 마음을 위로해주는 떡갈나무가 남기는 흔적들은 우리 삶의 나이 듦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무엇을 가지면 안 되는지를 떡갈나무가 비워내는 흔적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산청 수철마을 가는 지리산길 쌍재 넘어 고동재 고갯길 내려가던 숲길에서 만났던 떡갈나무들. 내적인 존재로 나이듦과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을 때 떡갈나무 숲길 나그네가 되어 그 숲길을 다시 걷고 싶다.  정미화 <광주·전남숲해설가협회> 정선생님 예쁜 글이라 옮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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