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봉산성은 비봉산의 자연지형을 이용한 테뫼식 산성으로, 전제 길이는 925m 정도이다. 성벽은 능선이나 절벽 등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주변의 자연석을 잘 가공하여 정연하게 축조된 모습이 확인된다.
비봉산성의 성벽은 해발 170∼220m 일대에 분포하는데, 현재는 서벽과 북벽이 잘 남아 있다. 동벽은 안산 정상부로 가는 능선을 가로지르면서 능선의 경사면과 돌출된 구릉 평탄부를 이용하였다. 성벽은 가파른 능선의 허리를 가로질러 축조하였으며, 완만한 산기슭의 평탄한 곳에는 부분적으로 5∼6단의 돌을 쌓았다. 서벽은 나지막한 봉우리에서 비봉산 정상부로 연결되는 가파른 능선을 깎아낸 뒤 가공한 자연석을 양쪽에서 축조하였다.
또한 남벽은 안산 정상부에서 나지막한 봉우리로 연결되는 능선인데 경사면을 깎아낸 뒤 양쪽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북벽은 안산으로 올라가는 능선 상에 있는 계곡과 절벽을 이용하여 가파른 능선사면에 3∼4단의 돌을 쌓아 축조하였으며, 북벽의 안쪽에는 오래된 절터가 남아 있다.
비봉산성의 문지와 건물지 두 곳이 있고, 우물은 폐사지 근처에 있는데 해발 180m 지점이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회청색 경질 기와편과 암갈색 토기편, 백자편 등이 출토되는 등 조선시대까지 산성의 기능을 했음을 보여준다.
비봉산성의 정상에 오르면 도곡면과 능주면의 전체 지역이 눈 앞에 펼쳐지며 멀리 화순읍까지 전망된다. 화순천과 지석천이 합류되어 영산강 본류를 향해 흘러가는 샛강의 모습이 억새와 함께 겨울의 정취를 자아낸다. 비봉산성의 정상에 서면 능주 일원의 방어와 영산강 상류를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사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비봉산에 위치하여 비봉산성으로 부르고 있지만, 예전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능주의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지명이 여래비리국과 잉리아현이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여래비리성 혹은 잉리아성이었을까. 통일신라시대의 능주의 지명을 따라 능성으로 불렸을까.
아니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비봉산의 옛 이름을 따랐는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능주의 요충지에 자리하여 유사시에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 등의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배후산성으로 짐작될 뿐이다. 지금은 옛 이름을 잃어 버렸지만 산성의 실체와 성격을 규명하고 정비 혹은 복원하기 위해 학술발굴을 실시하여, 영산강 상류지역의 고대산성의 성격과 지역문화의 성격을 밝힐 필요가 있다.
비봉산성 복원은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화순군 예산 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라남도에서 현재 추진 중인 영산강 유역 특정지역 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연차적 추진이 필요하다. 비봉산성을 정비 복원하여 영산강 상류의 관광거점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지석강변의 넓은 평야를 바라보는 비봉산성은 인근의 “대곡리 청동유물 출토지”, 비봉산 자락의 비지정 고인돌군 유적, 인근의 세계유산 화순고인돌군 유적과 연계하면 문화재 활용에 따른 개발 효과 역시 클 것이다.
또한 비봉산성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신리-효산리 고인돌공원을 연계하는 등산로를 조성했으면 한다. 외지의 탐방객들이 풍광이 수려한 비봉산에 올라 유적 답사의 정수를 만끽하고, 1시간 거리의 가벼운 등산을 할 수 있도록 산성의 정비와 복원에 앞서 탐방로를 조성하면 어떨까 한다.
능주 일원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은 비봉산성 외에 삼한 및 삼국시대의 고분을 들 수 있다. 능주지역의 고분은 기념물 192호로 지정된 능주 천덕리고분(3기)과 문화재자료 235호로 지정된 능주 관영리고분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내평리고분, 백암리고분, 연양리고분 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능주 일원과 주변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여러 문화 유적을 종합적으로 학술 조사하여 성격을 파악하고, 일괄적으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복원과 정비에 반전을 기했으면 한다.
여러 고분과 유적을 연결하는 고분 탐방로 개설하고, 도로변에 능주지방의 특산품인 배와 복숭아 및 자두나무 등을 식재하여 지역특산품과 역사유적이 함께 하는 특색 있는 탐방로를 조성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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