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서 소통은 의사소통의 상위개념이지만, 좁은 의미로도 쓰여, 자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지시할 것이다. 이런 포괄적인 소통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자연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을, 더 물을 수 있고 더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협의의 소통개념이라도 광의의 소통개념과 이어지는 맥락에 놓일 때, 그 방법론적 함의는 달라질 것이다.
사람의 삶은 늘 소통이 함께한다. 만남에서 소통이 안 되고 있어 보여도, 이는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불통일 뿐, 비록 작은 소통이더라도, 소통은 늘 일어나고 있다. 또, 하나의 소통이 갈등과 긴장을 안고 있는 소통이더라도, 소통은 소통이다. 아무리 일방적인 통고라 하여도, 그 메시지 중 약간은 들렸을 것이며, 긍정되고 수용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일방적인 통고가 초래하는 변화 내지 움직임은 지대할 수 있다. 저수지 뚝에 난 틈새의 미세한 흐름도 나중에 거대한 물난리를 수반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강변북로가 정체라 해도 느린 움직임은 있으며, 또 시간이 지나면 정체는 다시 풀리게 된다.
소통 없는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침묵의 만남이나 싸움의 만남도 역시 소통의 한 방식이다. 살기 위해 사람들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소통하고, 자연물과 만나면서 소통한다. 아니, 죽기 위해서 혹은 죽이기 위해서조차도 그런다. 만나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모든 종류의 행위를 의사소통으로 이해하는 오스트리아의 소통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사회학자, 철학자인 바츨라빅(Watzlavick, 1921~2007)은 ‘사람은 (의사)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소통의 있음과 없음보다 소통의 모습과 크기가 함께하는 삶에서 중요한 문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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