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절양’에 대해 다산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갈밭마을에 사는 어떤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3일 만에 (그 아이가) 군적에 오르게 되어 이정이 (군포 명목으로) 소를 끌고 가버렸다.
그 백성은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치른다.’ 하고는 칼을 갈아가지고 자기 양경(남자 생식기)을 잘라 버렸다.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양경을 주워들고는, 관청을 찾아가서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했으나 문지기는 도리어 호통을 치면서 쫓아 버렸다고 한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주민들의 삶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 본질은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는 기초든 광역이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심성과 능력을 이야기할 때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가정을 잘 살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정은 물론이고 공무원들이 자신의 가정을 살피는 일과 자신의 업무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곧 지역공동체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업무에 치여 가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제대로 꾸려나가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해보이지도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인성교육이 공교육에만 의존하게 되지만 인성교육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공교육 현실 또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입시위주의 학력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학교교육이 아이들의 인성까지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 결과 학교 폭력을 비롯한 학생들의 비이성적인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단순히 학교와 학생들만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게 이르렀다.
가정의 복원, 혹은 건강한 가정의 기능을 제대로 찾는 것이 곧 건강한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시킬 수 있는 가장 첩경이자 출발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우선 공무원들부터 가정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에서 지적한 학생들의 인성 교육도 결국은 가정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며, 가정의 붕괴는 곧 다양한 사회문제를 양산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 조사와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다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힘써야 할 부분이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소통 없이는 제대로 된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소통이 곧 통합형 리더십의 시작이다. 소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권위를 앞세우거나 자신의 본분과 주어진 권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직위로 군림하려는 태도이다.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겠다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한이 주어지고 직위가 주어지면 문제의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기보다는 조직원, 특히 자기보다 아랫사람들에게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하는 것이며,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했으니 그 처방 또한 올바로 내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자치단체장에게 소통하는 능력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 리더가 가져야 할 자세는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일 것이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조건 배려하고 존중한다고 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열사람의 열 가지 의견을 모두 따를 수 없는 것이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열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능력이 통합의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존중, 배려, 소통, 통합, 이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형평과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통합적 리더십으로 드러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원칙을 바로 세우되, 그 원칙을 형평에 맞도록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라도 원칙과 형평에 맞지 않을 때 다수의 의견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조건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형평에 근거하여 나름의 존중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칙과 형평을 지키는 것이 지도자에게 필요한 경우가 바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과정이다. 그래야 예측 가능한 인사가 되고 조직의 위계가 바로 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직성원들의 업무에 대한 의욕과 사명감을 갖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창의력까지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기 위해 연구하는 자기개발과 솔선수범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의 프롤로그에서 지방자치가 성공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그런 일들이 실천가능하기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자기개발과 솔선수범이라고 생각한다. 지도력은 주민들에게 받은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지도력이 지방자치 활성화와 지역발전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준비된 전문성과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책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지도자의 판단에 대한 신뢰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소양과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목표와 비전을 제시할 때 비로소 지역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대통령학에서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로 첫째는 건강이며, 둘째는 비전이고, 셋째는 설득력이라고 한다. 건강이라 함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과 생산하는 정책의 내용까지를 포함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은 희망이다. 실현가능한 목표가 희망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으며, 목표와 희망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비전이 되고 비전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목민의 자질과 요건 중에서 나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위에 열거한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그나마 진정한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의지, 한번 결심하면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고, 이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붙여놓은 의사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름의 원칙과 소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배움에 대한 갈증은 내 자신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목민관의 자질을 스스로 자문해보는 계기를 갖고자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가진 목표와 비전을 스스로 확인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조호권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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