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야의 전문가이며, 광주광역시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현장과 사람중심의 실물경제와 생활정치가 무엇인지 배웠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도덕적 자질, 지역경영과 행정에 대한 전문성, 지역주민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십에 있다. 열악한 기초자치단체의 재정구조 등에도 불구하고 당선되면 먼저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전시성 사업부터 눈을 돌린다. 여기에 지역의 건설회사 등을 비롯한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결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또 하나의 유형은 무사안일주의다. 애써 지역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거나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지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임기를 적당히 채우다가 다음 선거를 목전에 두고서야 재선을 위해 움직인다. 당연히 선심성 예산배정과 사업이 횡행하고 제 식구를 챙기기 위해 원칙과 기준을 무시한 인사권 남용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 살핀 제도적 한계와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지방자치는 지역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직접민주주의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지방자치는 지방의 균형적 발전과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 국가주도형 계획경제에 의한 압축적인 경제성장, 정치적 민주화의 더딘 진전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던 바, 그 정치사의 폐단을 돌이켜보면 중앙정부에 의한 지역발전의 균형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아가 세계의 경제석학들 대부분이 국가경쟁력의 동력은 이제 도시, 혹은 지방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방자치제도를 보다 현실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이양하고, 지방재정의 자립과 행정의 자율성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의 성공은 우리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 23년 동안 성공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했던 단체장들도 적지 않았다. ‘성공적인 지방자치’를 실현했던 선출직 목민관들의 공통된 특징 중에 하나가 지역주민과의 끊임없는 소통이었다. 행정공무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끌어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정책수립 과정에 외부 전문가들을 과감하게 참여시켰다. 물론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정책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지역주민들이 신뢰를 가지고 소통하고 합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살아 움직여야 광역단체도, 국가도 활력을 가질 수 있다. 국가로부터 위임된 사무에 안주하고 국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수동적 자치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초자치단체장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지방자치의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특히 기초자치단체가 성공적인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주민들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직접민주주의는 투표하는 날 하루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주민자치 역량이 대단히 미흡하다. ‘풀뿌리민주주의’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주민들의 참여가 활성화되지 않은 자치는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닌 셈이다.
둘째는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광주의 경우 북구가 현재 가장 낙후되고 정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말부터 상무지구 개발이 본격화 된 이후 이제까지 광주는 서진(西進)의 현상이 지속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구가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찾는 것은 곧 광주의 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광주 북구의 정체화를 극복하는 문제는 단순히 북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며, 이를 위한 광주광역시의 특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뒷장에서 광주 북구가 가져야 할 비전과 목표, 그리고 지속가능한 혁신에 대해 자세한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셋째, 자치단체장의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재정과 복지, 행정과 주민참여, 교육과 문화, 환경과 개발 등 자치단체장이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는 없다. 공무원들 또한 중앙정부의 각종 규제와 국가의 위임 사무 등으로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가 그룹들이 필요한 분야의 정책을 개발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추진전략을 수립하여 제공하고, 자치단체장은 그 정책과 추진전략을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역 현안 사업 및 개발과정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사안별 주민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넷째, 다양한 형태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작은 도서관을 거점으로 하는 문화공동체, 마을기업·협동조합 등 공유경제를 통한 나눔공동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작은 공동체 만들기와 활성화에는 지역의 주민단체와 시민단체 등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 단체들의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 실질적인 주민자치 역량을 키워갈 수 있다.
다섯째, 공공데이터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복지 및 예산집행과 세수 확대 등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빅데이터’의 활용이다. 이미 기업들과 주요 선진국들은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빅데이터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복지를 비롯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사후 관리가 아닌 예방 차원의 치안, 도로와 교통 관리 등의 주민 편익을 위한 정책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이미 빅데이터가 실용화되고 있다. 이제 정보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데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스마트 폰이 일반화되면서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그 엄청난 정보 중에 필요한 분야의 정보를 선택하고 가공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자치 활성화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과제는 지방자치의 한계와 대안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한계를 확인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문제는 한계를 넘고 대안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준비와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 속에 그 답이 있다. 시민사회의 견제와 감시의 대의적 수단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안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주민들이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말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하는 투표함에도 그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라 지방자치라고 생각한다. 주민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현안들을 함께 해결하는 주민자치,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바로 이 풀뿌리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참다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꽃이라 생각한다.
경제분야의 전문가이며, 광주광역시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현장과 사람중심의 실물경제와 생활정치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과 능력을 이제 내가 살고 있는 내 동네를 위해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아울러 시민여러분의 지혜와 뜻을 모으는데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이 졸고가 그런 저의 마음을 대신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광주광역시의회 의장 조 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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