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채석장에 서려 있는, 여러 전설[구충곤의 남도역사문화기행]
고인돌과 채석장에 서려 있는, 여러 전설[구충곤의 남도역사문화기행]
  • 고성중 기자회원
  • 승인 2014.01.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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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형국의 묘자리에 자리한 괴바위고인돌 전경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화순 고인돌공원은 춘양 대신리와 도곡 효산리 일대에 걸쳐 5km에 걸쳐 있는 보검재 계곡을 중심으로 각각 319기와 277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1995년에 발견되어 1998년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 많은 고인돌 중에서 규모가 큰 것과 채석장 등으로 활용된 고인돌에는 재미 있고 다양한 이름들이 설화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 먼저 도곡 효산리 모산 마을과 인접한 지역에는 풍수학적인 위치에서 볼 때 고양이 형국에 자리한 괴바위가 놓여 있다.
채석장으로 활용된 관청바위 전경
괴바위는 고양이 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괴바위 앞쪽에 위치한 성곡 마을 뒷산에 위치한 금성산 불등에 있는 풍산홍씨 선산이 쥐 형국을 이룬 것과 관계가 있다. 고양이와 쥐는 상극을 이루는데, 쥐 형국의 묘자리가 명당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괴바위 고인돌은 무덤으로서 의미보다는 괴바위 건너편에 있는 쥐 형국과 상극되는 풍수적인 의미로 유명하다. 또한 괴바위 고인돌은 5개의 괴임돌이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쥐바위를 거쳐 보검재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면 고인돌이 열을 지어 있는 관청바위가 나타난다. 구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보성원님이 나주목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곳에 앉아 민원을 보았다고 해서 관청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청바위 고인돌은 지석이 없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형태를 띠고 있다.

달바위고인돌 전경
관청바위를 지나면 월곡저수지 오른쪽 야산 꼭대기에 마당바위라 불리는 채석장이 멀리 보인다. 마당바위는 100여 명이 앉을 만큼 넓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고인돌공원 일대에서 확인된 4곳의 채석장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다. 관청바위 일대의 암석은 고인돌은 만들기 위하여 돌을 떼 낸 흔적인 완연하게 남아 있어 축조 과정을 잘 드러낸다.
보검재 정상을 넘어 대신리를 향해 조금 내려가면 발처럼 둥근 달바위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달바위는 산중턱의 비탈길에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로 보검재를 지나다닐 때 산능성 위에 있는 고인돌을 보름달처럼 큰 바위라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달바위 고인돌은 길이 560cm․폭 400cm․넓이 200cm이며, 굄돌이 6개나 되는 바둑판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큰 고인돌의 경우 무덤의 성격 보다는 혈연집단의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며 작은 것들은 무덤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달바위에서 대신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진 핑매바위를 만나게 된다. 핑매바위의 덮개돌은 길이 7m, 두께4m, 무게는 200톤에 달한다. 현대사회의 중장비로도 쉽게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그 엄청난 돌의 크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핑매바위는 아래 면을 다음은 흔적이 확인되며, 괴임돌이 돌려져 있다. 핑매바위처럼 규모가 크고 잘 다듬어진 고인돌이 산 기슭 약간 대지 위에 위치한 경우는 무덤보다는 제단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핑매바위의 유래는 마고할미가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마폭에 돌을 싸가지고 가는데, 닭이 울어 탑을 쌓는 일이 끝나 그만 돌을 버리고 갔다는 설화에서 생겨났다.
핑매바위 위에는 구멍이 있는데 왼손으로 돌을 던져 그 구멍에 돌이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들어가지 않으면 딸을 놓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바위 위에는 사람들이 던진 돌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핑매바위 고인돌 북쪽의 산 꼭대기에는 각시바위가 있다. 이곳에는 고인돌의 덮개돌 만한 바위들이 산재해 있어 채석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각시바위는 그 모습이 고운 새색시 각시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핑매바위를 지나 대신리 마을에 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감태바위로 불리는 고인돌 채석장이 위치한다. 감태바위는 갓을 쓴 사람의 모습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주변에는 채석장과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들이 밀집되어 있다.
감태바위 채석장은 돌을 떼어낸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감태바위 아래는 초군들과 초등들이 나무를 해가지고 오면서 놀던 휴식 공간이었다. 또한 감태바위 일대는 돈치기를 하거나 말타기 등의 민속놀이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이글은 '구충곤의 남도역사문화기행'입니다. 남도문화 중에 전남 화순편으로 100여 곳을 컨텐츠화하여 자랑스러운 호남의 문화유산을 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충곤 총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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