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비 내리는 날 택시에서 -이재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린다
오거리 신호등이 잠시 쉬었다 가란다
으스스 추위 타던 한 무더기 바람
은행잎 한줌 윈도우에 뿌려놓고 달아난다
노란 허무가 차 안을 들여다본다
50대 후반의 택시기사
머리가 유난히 희다
“기사양반 인생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기사 왈
“나같이 바쁜 사람은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구태여 묻는다면
인생이 뭐냐고 묻는 사람 태우고 가는 게
내 인생이요(아! 돈오)
손님은 인생을 뭐라 생각하시오”
“글쎄요
잘 모르니 물어보며 실려 가고 있는 중입니다”
차내는 미소가 가득 동행을 하고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은
서로서로 몸을 섞으며 어디론가
그 어디론가 서둘러 흘러가고 있다.
시인: 이재설
월간 순수문학 시(2003) ・ 계간 문학춘추 시 등단. 한국문협 ・광주문협・광주시협・펜광주・문학춘추작가회・시류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
詩評 - 시인 강대선-
『한시미학산책』에서 정음 교수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숨 귀고 밥 먹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도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를 괴롭혀 쥐어짜는 시. 안 알아준다고 닦달하는 시. 알맹이 없이 허세만 남은 시는 가짜다.” 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는 곧 우리 삶의 깨달음이다. 시인은 은행잎 흩뿌려지는 늦가을에 와 있다. 문득 인생이 궁금했나 보다. 은행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시인은 뜬금없이 초로의 기사에게 인생을 묻는다. 우문현답이라 했던가. 택시기사의 답이 가관이다.
“나같이 바쁜 사람은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구태여 묻는다면/인생이 뭐냐고 묻는 사람 태우고 가는 게/내 인생이요(아! 돈오)” 자연스럽다. 어렵게 뒤틀거나 쥐어짜는 것도 없다. 택시 기사의 인생관이 말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아, 돈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오(頓悟)는 불교에서 문득, 혹은 별안간 깨달음에 도달함을 일컫는다. 시인의 직관이 드러나는 곳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택시 기사가 다시 인생이 무엇인지 시인에게 물어오는 것이다. 여기에 또한 묘미가 있다. 시인은 “잘 모르니/ 물어보며 실려 가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태우고, 실려 가는 두 사람 사이에 깨달음의 교감이 일어난다. 숨 쉬고 밥 먹듯 자연스럽다. 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깨달음이 있을 때 진짜의 맛을 낸다. 시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아, 돈오!)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윤일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