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는 진정 시민을 위한 신드롬인가?
안녕하십니까?는 진정 시민을 위한 신드롬인가?
  • 고성중 기자회원
  • 승인 2013.12.2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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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고성중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뼈’ 빠지게 일해야 먹고사는 시민은 안녕하십니까에 관심이 없다. 뉴스에 ‘대자보니’ ‘뭐니’ 나붙어 시민의 저항력이 표출된것럼 보여진 현상들, 별 이상스런 대자보가 나돌아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어 진짜 민심이 걱정되는 것처럼 보여 진다.

사회에서 장난치면 재미있나?

혹한에 연탄 한 장이 아쉬운 어르신들을 보았는가? 먹고 살기위해 난방이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기성세대, 엄마는 노동자로 출근하고 아빠는 오라는 일자리가 없어 진짜 배고픈 시민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단어에 관심이 없다.

그저 배고픈 국민 된 관심으로 대통령이든, 자격미달 국회의원이든 나라의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시민들을 굶주림에 벗어나게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다.

정신차립시다.

국민의 세금으로 곳간만 불리는 위정자들, 지자체 ‘헛’ 공사를 만들어 콩고물이나 먹는 ‘장’들, 근간의 예로 전 광주광역시 박광태 시장은 사글세나 월세 방을 살던 시민이었으나, 근무 당시에 재산이 ‘수백억’으로 갑부가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했었다.

‘혈세남용’ ‘공금유용’ 등 지자체 장이 하지 말아야 하는 공권력을 사용해 시민의 피를 빨아먹는 흡입 자였다. 그는 “겨우 3년인가 구형을 받았다. 돈 있으면 세상을 변질되게 할 수 있는 세상이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충 장난치는 사회는 정당한 사회구조가 아니다.

항간에 신도들의 천원자리를 몰래 빼가는 교회의 책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시민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시민에게 이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자들이 부정부패에 근원을 오히려 만들고 있다.

사회가 어려워 반쪽이 났다고 아우성인 것도, 1억 정도 빛을 가지고 사는 것도, 시민들은 안녕하지 못하니까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부추기지는 말아야 한다.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시민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 밑바닥을 보지 않고 공중기류만 냄새로 맡듯이 유행처럼 지나갈 안녕하십니까? 시민들이 더 힘들어 지기 전에 다른 유행어가 나왔으면 좋겠다.

부정부패도 문화로 되어버린 변질된 사회구조

부정부패가 치졸한 문화로 급부상하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안녕하십니까’는 잘나가던 부류의 항변으로 보인다, 부패한 사회에서 먹고 살만한 상류층 사람들에게 ‘안녕하십니까’ 단어는 그저 그들끼리 경각심을 주는 단어정도이다.

INF도 견뎌내고 지금까지 먹고 사는데 까지는 잘 견뎌 왔다. 앞으로가 문제다. 사회에서 말이 많으니 대자보로 글로 표현되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단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생각하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공적기관에서 주도적으로 빠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

배고픈 시민들은 행복 따윈 사치다,

시민은 먹고 살기 바쁘다. “안녕하냐고” 누가 질문은 한다면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백 여 만원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시민들이 ‘안녕하십니까’를 남발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언론프레이를 하고, 어려운 시국에 시민에게 여론을 조성하고 재미삼아 그런 짓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왜’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는가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대자보’는 예로부터 벽보(壁報), 방문(榜文), 민방(民榜) 등으로 불리며 시대의 양심을 밝혀왔다. 그리고 대자보가 붙을 때 마다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 시민들의 마지막 소리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시민에게 고통을 주는 단어가 사회에 팽배해지면 사회는 더 힘들어지고 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사회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봅시다 서로 격려하고 칭찬이 나도는 사회를 시민은 그리워한다. 잘살게 서로 논쟁하며 잘못된 것은 빨리 수정하는 사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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