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호기심은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먼 길을 가게하고, 새로운 것을 찾게 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게 하는 근원적 동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길을 가다보면, ‘앞에 무엇이 있을까?’ ‘왜?’라는 의문은 t새로운 의문을 만들어, 이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고지에 오르게 되고 발견과 발명을 하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하는 만큼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두렵다. 하지만 빙하가 어떻게 생겼고 산자락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산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산으로 이끌어 왔다.’ 세계최단기간 히말리아 14좌 무산소 완등을 마치고 돌아

오늘의 문명은 이런 호기심들이 만들어온 것들의 결과물이다. 현재의 나에 안주하가 보다 먼 곳, 낫선 세계를 향하려는 호기심, 이에 이끌리어 도전의 의지를 세우고 이를 향하여 도전하다 보면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된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낫선 곳에 도전하기보다 증명된 것, 확실한 것을 향한다. 즉 ‘스펙’을 만들기에 모두 열중이다. 확실한 직장을 갖기 위해 학위와 각종 자격증 따기에 매달린다. 즉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 확실히 증명된 길만을 갈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금기의 대상이다.
반면, 지나친 호기심이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성적 호기심이 그것이다. 광학기기의 소형화와 고급화에 의존하여 관음증을 키우고, 도덕과 윤리의 통제 보다 익명과 본능에 의존하어 더욱 확대 재생되어 보편화 되어간다.
경제적 당위성에 막혀 호기심을 펴지 못하거나, 그저 본능적 호기심에 빠져버린 다면 미래는 어찌될까?
자연 속에서 반딧불이의 불빛을 쫒고, 별동별을 보면서 호기심을 키우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모르는 것은 전화기에 물어보는 시대다.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대한 상상과 의문으로 만들어지는 탐구욕은 전화기의 지식의 파편들로 채워진다.
간단히 채워지는 호기심은 창의적 사고를 막고 새로움에 도전하려는 욕구를 만들지 못하게 할 것이 확실하다. 의문이 모이고 깊어져야 생각에 빠지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관심은 점점 깊어져 미지의 길을 가게 된다.
당연히 미지의 길은 난관과 만나게 되어 극복하려는 열정이 일어날 것이다. 결국 호기심과 열정이 성공을 만든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인다는 말은, 알아 가는 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스펙’의 경우에는 다르다.
자격증은 그저 알아야 할 것만 알면 될 뿐, 시험에 도움 되지 않는 의문은 방해만 될 뿐이다. 특히 쌓아야 할 ‘스펙’이 많으니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외우기만 하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다.’ 라고 말 했다. 이 말에, 호기심을 상실해 가는 현대의 인간을 대입해본다면, 호기심을 잃어가는 현대의 우리들은 인간의 특성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정해진 길, 정해진 일만 한다면 기계와 무엇이 다를까?
호기심으로 꿈을 꾸고, 용기로 도전하고, 좀 돌아가는 삶, 이런 삶을, 인간의 삶이라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