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법원이 한국일보 기자들이 낸 편집국 폐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이영성 국장의 해고도 효력이 정지되면서 굳게 닫혔던 편집국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한국일보 정상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에 본보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보내는 친구, 선후배들의 우정을 담은 편지를 싣는다. 일부 원고는 법원 결정 이전에 작성됐지만 한국일보 기자들에 대한 기자사회의 굳건한 연대를 재확인하는 의미에서 그대로 싣기로 했다.(이름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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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중 국민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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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기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김남중(국민일보)이 이희정에게
신문을 만드는 게 기자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죠. 그런데 신문이 영 엉망이라면 그걸 고쳐야 할 사람도 기자입니다. 지금 한국일보 기자들은 신문을 고치는 중입니다. 고치지 않고는 제 구실을 못할 지경 아닙니까.
지금 한국일보 기자들은 특별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180여 명의 기자들이 공동 바이라인으로 쓰는 이 기사에는 부도덕한 사주에 맞서 신문을 지키려고 일어선 용감한 기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선배, 지치지 마세요. 20여년 기자 생활이 이대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좋은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여기서 좌절하지 않도록, 조금 더 힘을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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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KBS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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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기에게 무한지지를
김세정(KBS)이 김소연에게
내 동기 소연아. 10여 년 전 스물다섯 꼬마 때 중학동 사옥에서 옹기종기 일 배우던 우리가 이제 어떤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연차가 되었구나.
26일 전 편집국이 폐쇄됐을 때, 하루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근래 본 네 모습은 의연하고 씩씩해서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팠어. 편집국 문은 열렸지만 앞으로도 싸움은 계속되겠지. 1년차 때 당당했던 네 모습 그대로 모든 동료에게 힘이 되어주리라 믿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건강 챙기고, 웃으며 후일담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도하고, 무한 지지할게. 동기 세정이가.(한국일보 6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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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연 오마이뉴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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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에 다시 함께 서기를
김시연(오마이뉴스)이 홍인기에게
낯설었습니다. 카메라 대신 빈손으로 포토라인과 마주선 모습이.
오죽했으면 오랜만에 마주친 동문 선후배끼리 어색한 눈인사부터 나눴을까요.
그날 굳게 닫힌 편집국 철문 앞에서, 통신사 사진들로 도배된 신문 앞에서 답답해하던 선배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와중에 사무실에 두고 온 카메라 걱정뿐인 선배가 안타까워 힘내라는 말도 못 건넸네요.
마침 법원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머잖아 그날 그토록 그리던 카메라를 들고 다시 포토라인에 설 선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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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중 경향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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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싸움 반드시 이겨내세요
김재중(경향신문)이 정상원에게
상원이형! 지루한 장마보다 더 짜증스런 한국일보 사태를 헤쳐나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형의 건강이 슬며시 걱정되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일보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형의 얼굴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어느새 경험의 더께가 꽤 앉았기에 형 앞에 얼마나 험난한 길이 펼쳐질 것인지 직감한 것이지요. 법원이 어제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필귀정으로 가는 첫 단추가 꿰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원이형! 청명한 정신과 견결한 의지 못지 않게 건강도 챙기셔서 긴 싸움을 반드시 이겨내기실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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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훈 뉴스1 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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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보면 눈물이 났다
김철훈(뉴스1)이 황상진에게
지난달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후 가슴이 아팠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 아픈 일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뒤돌아보면 한국일보 사측의 이러한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세월이 흘러도 계속해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우리들의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상진아, 페이스북에서 선배 동료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 1인 시위를 하는 그들에게 ‘좋아요’를 누르지도 못했다. 그래도 상진아,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 시련을 오랜 세월 뇌사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일보를 깨우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기운 잃지 말고 선배, 동료, 후배들과 뚜벅뚜벅 걸어가주길. 그 뒤에는 한국일보 식구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한국일보 5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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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어리 프레시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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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빠순이’ 허 기자, 잘했어!
서어리(프레시안)가 허경주에게
2년 전, 푹푹 찌던 어느 날이 생각나. 김치찌개를 먹느라 땀범벅인데도 손에서는 펜을 놓지 않던, 그 펜으로 한국일보에 열심히 밑줄을 긋던 언니의 모습. 그 열정에 탄복해 나도 가끔 한국일보에 밑줄을 그어보곤 했어.
언니를 따라 본 한국일보는 고민이 많은 신문이었어. 여기저기 절제의 흔적들이 보였지. 안타깝게도 요즘 한국일보는 그런 고민 따윈 내던진듯해.
‘한국일보 빠순이’던 언니가 잠시 펜을 내려놓은 건 바로 그 때문이겠지. 본의 아니게 ‘직무유기’ 중인 언니에게 인기 드라마 대사를 들려줄게. “잘했어 짱변” 아니, “잘했어 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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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성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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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손성진(서울신문)이 이충재에게
이 국장! 국민과 약자의 편에서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고자 노력했던 한국일보가 이런 상황에 놓여 동료로서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언젠가 승리할 것입니다. 사법부도 정의의 편임을 가처분 판결로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한국일보 기자들은 곧 현장으로 나가 다시 뛰게 될 것입니다. 펄펄 살아있는 지면과 이 국장의 정론직필을 다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국장! 힘을 내십시오. 더운 날씨에 사주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투쟁하고 있는 선후배님들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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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진 CBS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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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바이라인’을 보고 싶습니다
신동진(CBS)이 김현수에게
김현수 기자! 김 기자를 바이라인이 아닌 투쟁 사진으로 접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일보 이외의 곳에선 기자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김 기자에게 이번 사태는 더욱 충격이었겠지요.
비록 지금은 사측의 횡포로 편집국이 봉쇄되고 파행 발행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지만, 한국일보는 반드시 정상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과 사명감 넘치는 기자들로 이뤄진 한국일보이기에 이 믿음은 확고합니다.
현장에서 김 기자를 지켜봤던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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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규 한겨레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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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병진이 형
오태규(한겨레)가 정병진에게
정병진 주필님, 아니 병진이 형! 저는 형을 볼 때마다 주필의 근엄성보다 형의 친근감이 더욱 가깝게 다가옵니다. 제가 그 회사에서 기자생활 첫 2년을 보내면서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는 전통에 물든 탓도 있을 겁니다. 어떤 이견도 너그럽게 끌어안는 포용력, 상하 없이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개방성을 경험할 때마다 전 형의 진면목을 다시 보곤 했습니다. 한국일보가 자랑하는 중도의 힘도 형의 이런 능력에 큰 빚을 지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형, 지금이야말로 형의 리더십이 더 절실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힘 내세요.(한국일보 4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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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뉴시스 경기남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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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굴하지 않는 선배에게 경의를
이승호(뉴시스 경기남부)가 김기중에게
김기중 선배, 기자 정신은 알량한 사주의 금력과 폭력에 굴하지 않습니다. 저는 뉴시스 경기남부에서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김 선배가 어떤 기자인지 잘 압니다. 취재 현장을 누벼야 할 선배가 범법자 사주의 편법적인 인사 전횡과 편집국 폐쇄라는 폭거에 맞서 지난 25일 동안 거리에서, 편집국 입구 복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안타깝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는 선배와 한국일보 동료 기자들의 투쟁에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꺾이지 않는 펜의 힘! 진실로써 승리를 거머쥐는 그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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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걸 내일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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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웃을 날, 멀지 않았습니다
이재걸(내일신문)이 허정헌에게
정헌 선배, 얼마 전 한국일보 건물을 동료 분들과 함께 지키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세상 온갖 부조리를 내 일처럼 아파하며 술잔 비울 때 말곤 ‘백옥’같던 선배 얼굴이 많이 탄 것을 보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가정이 있는 생활인으로서는 안타까움을, 같은 기자로서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과연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선배들처럼 의연할 수 있을지 곱씹게 됩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평탄치는 않겠지요. 늘 정의감도, 애정도 뜨거운 선배가 본래 자리에서 가장 선배답게 웃고 일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오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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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수 채널A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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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팀의 교과서, 어서 돌아오라
정원수(채널A)가 박상준에게
상준아, 벌써 한달 가까이 기자실의 네 자리가 텅 비어있구나. 사건사고 취재현장에는 늘 한국일보 기자들이 앞장섰던 것 같다.
한국일보에 몸 담으면서 내가 선배들에게 배운 것도, 너를 포함한 후배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도, 그리고 네가 얼마 전까지 사건팀 후배들에게 보여줬던 것도, 모두 ‘아수라장’ ‘우왕좌왕’ 현장에서 어떻게 취재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사건팀의 교과서’인 한국일보 후배들이 다시 뛰고, ‘진짜 한국일보’가 부활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한국일보 6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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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일 MBC 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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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자네는 당당히 돌아올 걸세
정형일(MBC)이 이영성에게
이영성 국장이 해고라고? 그래, 아무도 믿지 않았지. 늘 한국일보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한국일보 사랑에 푹 빠져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리를 떠나야 하다니….
이런 이유로 요즘 자네는 내가 가는 술자리 마다 꼭 안주상에 올라. 처음엔 다들 걱정으로 얘기를 시작하지만 항상 마무리는 반드시 당당하게 돌아올 것이란 믿음으로 끝나지. 왜냐하면 자네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야.
또한 자네 옆에는 불멸의 기자 사관학교 출신 선후배 200명 가까이가 든든히 함께 하고 있잖아.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네. 조금만 더 힘을 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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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호 세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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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 함께 가자
조성호(세계일보)가 이성택에게
성택아, “내일 뭘 쓰지” 고민하며 신출귀몰 취재 다니던 네가 없는 기자실이 허전하구나. 언제나 ‘한국일보’ 기자임을 자랑스러워 하던 네 이름이 신문에 실리지 않은 지도 벌써 3주가 지났어.
마침 법원이 사측의 편집국 봉쇄와 집배신 차단을 불법 직장폐쇄라고 판단했다는 소식이 들려 반갑더라.
새삼스레 이게 네가 줄기차게 말해 온 ‘상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다시 펜대를 잡고 돌아올 날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희망도 생겼다. 곧 끝날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할게. 힘내라, 성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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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윤경 OBS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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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날카로운 기사가 그립습니다
차윤경(OBS)이 김지은에게
지은 선배, 맘고생 몸고생 속에서도 선배의 미모와 물광 피부는 여전하네요.
편집국 폐쇄에 맞서 싸우는 동료들의 얼굴 얼굴이 낯익어 더 가슴 아픕니다. 저희도 지난 3월 파업을 해본 탓에 지금 다들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아리네요. 빨리 선배의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기사를 보고 싶어요. 정치부 말진으로 처음 만나 바이스로 조우한 뒤 신세한탄 했던 것처럼 다시 현장에서 만나 같이 취재하고, 같이 한풀이하고, 같이 술 마시고 싶습니다.
한국일보 동료들의 정의로운 싸움을 끝까지 지지합니다. 선배, 먼저 지치는 게 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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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율 시사IN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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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릿한 강단의 ‘최진주 누나’
천관율(시사IN)이 최진주에게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누나는 이미 졸업생이었다. 종이 노트에 잡기장을 쓰던 시절. 심심할 때면 선배들의 잡기장을 뒤적였다.
누나는 글을 길게 쓰지 않았다. 짧은 한두 줄에 강단이 저릿했다. 누나의 기사를 볼 때면 그때 기억이 나곤 했다.
누나는 요즘 한국일보 기자들의 입이 되었다. 저릿한 강단은 여전한데, 위치가 어색하다. 바이라인에 있던 이름이 본문으로 갔다.
‘비대위 부위원장 최진주’가 ‘최진주 기자’로 돌아올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제대로 된 결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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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재락 KBS진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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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착한 형을 화나게 했나요
황재락(KBS진주)이 이창선에게
형, 저에요, 푸(Pooh)~.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2002년 월드컵에 온 나라가 들썩일 때, 저는 꿈에 그리던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사에 첫 발을 내딛었고, 형은 제가 만난 첫 직장 선배이자 하늘같은 데스크셨죠. 좌충우돌, 제 기자생활의 시작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중학동 뒷골목의 석양주와 청진동 해장국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자양분입니다.
늘 사람을 먼저 생각하던 ‘착한’ 형이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죠? 어서 빨리 사주 일가의 횡포를 넘어 형이 녹색 깃발 휘날리는 한국일보의 주인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차차차’ 한 번 떠나요~!(한국일보 6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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