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19일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그간 위기의 리더십을 발휘해 온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정치입문 15년 만에 ‘대한민국호’ 선장에 올랐다.

이는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위기라고 판단한 유권자들은 우리나라의 총체적인 위기를 타파할 적임자로 그를 선택한 것이다.
박 당선자에 바라는 국민적 바람은 단순하다. 이제 국민과 서민을 위한 진짜 ‘민생 대통령’과 과거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로 세계로, 미래로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그 역사적 소명을 박 당선자의 어깨에 지웠다.
◇피 말리는 접전, 대세를 꺽지 못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일 오전 4시44분 현재 최종 개표 결과 박 당선인은 득표율 51.6%(1577만3100표)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48.0%, 1469만2609표)를 3.6%포인트(108만491표)차이로 제쳤다.
특히 박 당선인은 17개 시도 중 서울, 광주, 전남 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격차는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래 최소 차이다. 87년 194만 표(노태우 대 김영삼)→92년 193만 표(김영삼 대 김대중)→97년 39만 표(김대중 대 이회창)→2002년 57만 표(노무현 대 이회창) 차였다.
박 당선자의 승리의 요인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과 함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양극화 극복'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투표율이 높은 것이란 관측대로 18대 대선 투표율이 75.8%를 기록했다. 이날 오전 7시(2.8%)를 시작해 오전 11시 26.4%, 12시 34.9%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오후 들어선 40%대를 돌파해 1시 45.3%, 4시에는 65.2%까지 급상승했으며 투표마감 시간인 6시에는 80%에 육박했다. 이는 16대 대선(70.8%)과 17대선(63.0%)보다 높은 수치다.
이로 인해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젊은층 투표가 늘어나 야권에 유리하고, 반대로 투표율이 낮으면 여권에 유리하다는 공식 때문이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밤 9시 30분부터 서울과 전북, 광주, 전남을 제외하고 경기, 인천, 강원, 경북, 대구 등에서골고루 50% 이상의 득표를 얻으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까지 초박빙, 위기속에서도 건재함 과시=그의 당선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 당선자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해왔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여왔다. 더욱이 출구조사 마저 초박빙 승부를 벌이면서 개표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전개됐다.
이날 오후 6시 MBC·KBS·SBS 방송3사가 발표한 공동 출구조사 결과 박 당선자가 50.1%로, 48.9%의 문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또 YTN 예측조사에선 박근혜 46.1~49.9% VS 문재인 49.7~53.5%, 종편인 JTBC 출구조사는 박근혜 49.6% VS 문재인 49.4%로 각각 집계되는 등 우위를 가리기 힘들었다.
이로 인해 당선 윤곽은 다소 늦은 시간에 드러난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표 초반부터 박 당선자가 리드하면서 밤 10시께 득표율이 51.8%(1천29만566표)를 얻어 당선을 확실시 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막판에 후보직을 사퇴한 데 이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까지 사퇴하면서 문 후보가 명실상부하게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게 되면서 박 당선자를 위협했지만 단일화 효과는 미미했다.
이는 안 전 후보의 사퇴, ‘문재인 지지’ 등의 컨벤션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박근혜 대세론’을 무력화시켰지만 문 후보의 지원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취하면서 중도층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위기에 강한 ‘박근혜’= 박 당선자는 그간 위기에 강한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그는 연설 등을 통해 자신을 경험 많은 선장에 비유하면서 “우리나라는 큰 위기에 있다.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가 (위기를) 이겨낸다”고 말했다.
위기 국면마다 박 당선자의 위기의 리더십을 보여 왔다. 1997년 대선 패배가 박 당선자의 화려한 정치입문을 만든 계기였다면 2002년 대선패배는 그는 정치지도자로 부상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지난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은 당시 천안 연수원 국가 헌납 등의 조치를 취하고 대대적 물갈이로 한나라당을 존폐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재·보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권 측근 인사들의 잇단 구속과 당내 비리 등으로 다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다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당을 뜯어고쳐 새누리당으로 출범시켰고, 대선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결전의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이란 기념을 토했다.
박 당선자는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꼽았다. 그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릴 리더십은 영국병에 신음하던 영국을 되살린 대처리즘”이라며 “대처 총리가 영국을 살려낼 수 있었던 힘은 ‘시대에 맞는 원칙’이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박 당선자의 당선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를 ‘박근혜式 리더쉽’으로 이끌기 바라는 유권자의 표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뉴스웨이 pressdot@newsw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