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기에도 좁은 3.3㎡ 남짓한 공간에서 밥을 지어야 해 항상 화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무더운 여름엔 밥 짓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던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공동주방’이 용산구 동자동에 첫 탄생했다.
그동안 쪽방촌에는 공동 화장실과 수도는 있어도 공동취사 장소는 없었다.
특히 이번에 조성된 동자동 공동주방엔 주방 한 쪽으로 다양한 책들도 비치돼 쪽방촌 주민들의 문화갈증도 다소나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저소득 밀집지역 마을공동체 사업 일환으로 ‘쪽방촌 공동주방 만들기’ 사업을 선정, 한 달여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 11일(화) 오후 3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공동주방 ‘사랑방식도락’ 개소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개소식엔 공동주방 운영을 맡을 동자동사랑방(대표 : 엄병천) 관계자와 사업을 지원한 서울시 관계자, 현대산업개발(주), 중앙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학과 학생들, 주변의 복지시설,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랑방식도락’의 첫 출발을 축하할 예정이다.
갈월종합사회복지관, 효창종합사회복지관 등 주변의 복지시설, 남대문쪽방상담센터를 비롯한 인근 쪽방촌 현장 활동가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등 장애인 단체, 용산연대․홈리스 행동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개소식은 마을주민들과 이웃 상인들에게 떡을 돌리고, 축원문을 써서 대들보에 붙이고, 주민들이 자체 준비한 간단한 축하공연과 그 동안의 과정을 요약한 동영상이 상영된다.
특히 동자동 공동주방은 기존 수혜방식이 아니라 터를 일구고 사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명칭부터 활용방안, 운영 방식 등을 주체적으로 정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진행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랑방식도락(食圖樂)’은 밥이 있고 책이 있어 즐겁다는 의미로 9차례에 걸친 주민회의를 거쳐 지어졌으며, 공동주방을 마을 도서관으로 확장해 활용하는 방안도 주민들의 의견이 모여 결정됐다.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현재도 활발하게 주민회의가 진행 중에 있는데 한번에 10명 내외가 이용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을 주민들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회원제로 운영, 시간차로 이용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또, 설계도면부터 시공, 시설비까지 공동주방 조성에 뜻을 같이 한 비영리 민간단체와 대학교, 기업체, 복지단체 등의 재능, 성금 기부를 통해 사업이 진행돼 눈길을 모은다.
동자동 공동주방 공간의 경우 동자동사랑방이 기존에 사무실로 이용하던 26㎡의 1층 공간을 리모델링(새단장)해 사용하는 것으로, 사무실을 임대해 준 건물 주인도 장기간 안정적 임대를 약속했다.
동자동사랑방은 비영리 민간단체로 이번 사업을 제안한 곳이기도 하며, 기존엔 쪽방지역 주민 대상 빈곤상담, 마을기업 ‘밥이보약 밥집’ 운영, 쪽방지역 마을신문 ‘쪽방신문’ 제작 등 쪽방주민들의 빈곤문제 해결과 복지, 인권 보장에 앞장서왔다.
공동주방 설계는 중앙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학과 이정은 교수가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세 번이나 설계도면을 수정하며 무료로 그려 주었고, 특히 현장을 직접 둘러본 학생들은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1백 만원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주)도 주방 리모델링(새단장) 사업에 시설비를 후원했다.
주방 시공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수급자들로 이루어진 자활근로사업단인 ‘서울주거복지사업단(대표 : 오치성)’이 진행해 같은 처지에 있는 주민들에게 힘을 보탰다.
서울주거복지사업단은 올해 기업형태로 전환을 꿈꾸는 자립을 준비하는 단체로 이번에 현대산업개발(주), 중앙대학교, 동자동사랑방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동자동 공동주방을 시작으로 쪽방촌 공동주방 조성사업을 서울에 있는 총 9개 쪽방촌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식재료를 준비하고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마을 주민들간의 유대감도 높아져 형편이 어려운 주민을 위한 ‘밥상나눔’도 쉬워져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는 식사공제조합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공동주방을 이용하려면 본인이 직접 식재료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쪽방촌 주민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서울에 있는 여러 쪽방촌에는 모두 한두 개의 공동주방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동네 분들이 공동주방을 알차게 꾸려서, 다른 지역에도 전파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관은 “사랑방식도락이 공동주방의 역할 뿐 만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이 서로 친근한 이웃으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의미 있는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시민기자협회 서울특별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 / 시민기자 김선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