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7범 회장님
전과7범 회장님
  • 한국시민기자협회
  • 승인 2011.02.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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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씨 대구에서 알아주는 '타짜'였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허석윤기자가 쓴 인터뷰 글 입니다. 시민기자들에게 인터뷰기사 공부하는데 도움도 되고, 감동적인 내용이기에 올려 놓습니다.허기자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 시시잡담(時時雜談) | 허석윤기자 |
대학 새내기 시절 언론학 시간에 가장 많이 접했던 말이 ‘현대는 정보의 홍수시대’라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이 흐른 이제는 아마도 홍수 정도가 아니라 ‘해일’시대쯤 될 것 같습니다. 제게 해일은 어차피 피할수 없는 노릇. 차라리 광대하고 험난한 정보의 바다로 먼저 달려가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띄우고,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누며 쉬엄쉬엄 노를 저어볼까 합니다. 운이 좋다면 캄캄한 밤 정보의 해일뒤에 숨겨진 등대의 불빛도 가끔 볼 수 있겠지요.

전과7범 회장님
작성자:허석윤 조회수:1202 

 

지난 8일 오후 기자는 전과 7범출신의 최성삼 요일시장 상인회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사진기자와 함께 칠곡IC 인근 도로변 시장을 찾았다. 그날이 말복이었던 만큼, 상당히 무더웠음에도 시장은 꽤 북적였다. 최 회장을 제보한 신재천 영화협회 대구지회장을 만났지만, 무슨 볼일이 있는지 최 회장은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20여분 정도 기다렸을까. 신 회장이 전화통화를 마친 뒤 막 최 회장이 도착했다면서 (조용한 데서 취재하자며)우리더러 따라 오라고 했다. 얼마쯤 걷다 신 회장에게 물었다. "최 회장님이 왜 안보입니까?? "저기 오시네요!? 신 회장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미처 최 회장인지 몰랐다. 와이셔츠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오는 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옷차림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인터뷰는 도로변에 주차된 신 회장의 승용차 안에서 진행됐다. 인터뷰 도중 최 회장의 휴대폰이 수시로 울렸다. 대화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급기야 보부회(요일시장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찾는다며 자세한 내용은 총무부장과 이야기 하라면서 자리를 떴다.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취재고 뭐고 때려치워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됐지만, 꾹 참고 총무부장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전과자라는 점과, 많은 선행을 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내심을 갖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친김에 최 회장 덕에 맘잡고 산다는 전과자 출신의 상인 2명을 인터뷰 했다. 그리고 최 회장과는 나중에 전화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 글은 영남일보 14일자 1면 커버스토리로 실린 기사다. 이 기사를 울궈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신문지면의 제한때문에 잘려나간 기사 원문을 다시 싣고자 하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기사라고 재탕하느냐고 지적하면 할말이 없지만, 어두운 과거를 씻고 시장에서 희망을 찾아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욕구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


 대구시 북구 읍내동 칠곡IC 인근 도로변. 평소 한산할 따름인 이곳이지만 금요일만 되면 시끌벅적한 장터로 변한다. 이른바 (금)요일장이 들어서는 것. 말복인 8일 오후, 막바지 여름의 피날레라도 장식하려는 듯, 태양이 미친듯이 열기를 퍼붓고 있었지만, 여느 금요일처럼 이곳에는 삶의 활기가 넘쳐났다.
 인도변을 따라 다닥다닥 궁둥이를 붙인 200여개 노점들의 행렬은 어림잡아 1km. 제철 과일을 비롯해 생선, 육류, 건어물, 의류, 침구류 등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다. 다른 재래시장과 비교해 물건의 종류나 품질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지만 가격은 엄청 싸다. 이는 상당수 물건을 산지에서 직송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때문인지 요일장은 대낮부터 손님들로 북적인다. 해가 빠진 뒤 선선해지면 거짓말 좀 보태 발디딜 틈이 없다는 게 한 상인의 귀뜸이다.

▲전과자들의 꿈과 희망인 요일시장
 요일시장은 주중 5일간 요일별로 대구시내 5곳을 순회하며 정기적으로 열린다. (월-성서이마트 부근, 화-달서구 월성아파트단지 인근, 수-북구 칠곡50사단 인근, 목-수성구 시지 신매초등 인근, 금-북구 읍내동 칠곡IC 인근)
 십몇년전에 생겨난 요일장은 물건 값이 싸다는 점 외에 남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전과자들의 재기를 위한 '희망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 요일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은 300명쯤 되지만, 할머니 보따리 장사 등을 제외하고 요일장 상인모임인 '보부회'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은 168명이다. 이중 전체 40%인 68명이 전과자 출신. 이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연령대로는 30대 초반부터 70대 노인까지가 있으며, 범죄 경력은 전과 3범부터 2십몇범 혹은 무기징역을 살다 나온 사람도 있다. 강도·사기·소매치기·조직폭력 등 이들이 지은 죄를 모아 보면 가히 '범죄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과거지사다.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이들은 모두 요일시장 상인과 시장 경비원으로서 개과천선의 길을 걷고 있다.

▲전과 7범의 천사표 회장
 요일시장을 전과자의 재기 터전으로 만든 사람은 보부회 회장인 최성삼씨(55)다. 6년전 회장을 맡은 그는 지금껏 수많은 전과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베풀었다. 이는 최씨 자신이 이들의 처지와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씨는 전과 7범이다. 교도소 밥만 18년 넘게 먹었다. 대구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일찌감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 소매치기로 시작해 조직폭력, 마약 등 범죄를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처럼 새사람이 됐다. 13년전 안양교도소 출소 후, 가족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요일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8년전부터 생선가게를 하고 있다는 최씨는 "장사를 처음 시작할때 잘 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 였지만, 하루 하루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름다운 변신은 주위에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진정한 '장사꾼'의 길을 걸으며 범죄 대신 선행을 행하고 있다. 그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전과자들이 밝은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주위 누군가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사비를 털어 뭉칫돈을 전해준게 다반사였다. 힘들다며 장사를 접고 뛰쳐나간 전과자를 찾아가 다시 데려오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는 일년에 한번씩 경로잔치를 열어 사회에 보답코자 하고 있다.
 최씨는 그의 넓은 마음 만큼 베풀지 못한다. 생활이 넉넉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를 포함한 네 식구가 손바닥만한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아등바등해도 생활이 어렵다. 요즘엔 장사도 더 안된다. 하루 5만원 벌기도 힘들단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고 언제나 부자다. "어렵게 살아왔고 지금도 어렵게 살고 있지만, 죽을때까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그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
 요일시장에는 최씨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사는 '전과자 상인'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최 회장이 너무 고마워서 인간적으로 믿고 따른다고 입을 모았다.
 보부회 총무부장을 맡고 있는 김모씨(53)는 전과자는 아니지만 사업체 부도로 요일장 상인이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씨는 "최 회장님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못지나 간다. 얼마전 딱한 처지에 놓인 상인에게 치과 치료비 500만원을 선뜻 내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다슬기를 파는 신모씨(57)는 마약사범 출신으로 3년전에 최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신씨는 "18년간 마약을 하는 동안 하루하루가 고통과 불안의 나날 이었다. 최 회장 덕에 이제는 정말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방문도 활짝 열고 산다?고 고마워 했다.
 과일 장사인 박모씨(52)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타짜'였다. 도박과 조직폭력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그였지만 최 회장을 만나면서 인생역전을 이뤘다. 그는 특히 3년전 일만 생각하면 목이 멘다. 몇년간 해오던 장사를 팽개치고 다시 도박을 하다 교도소에 잡혀 갔던 그를 최 회장이 찾아 왔던 것. 최 회장은 눈물로 후회하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당시 신우염을 앓던 박씨 부인의 치료비를 마련해 줬고, 출소 후 박씨가 장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씨는 "도박은 가정 뿐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을 잃는다. 그때 최 회장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훌륭하게 성장한 두딸과 아내를 모두 잃어 버렸을 것?이라며 "최 회장님이 베풀어 준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못갚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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