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해서 미안해요
수필가 유인숙
"당신이 여행을 좋아했으니까 여기 저기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 법문 듣고 지내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 곁으로 갈게요."
“그 사람만 잘못한 게 아니에요.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외롭게 했어요.”
지장암에서 걸어 내려오면서 들은 이 말이 정말 따스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대산 계곡에 봄이 오는 물소리, 바람 소리가 우리 곁을 떠난 이의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그녀는 30년간 직장에 다니며 워킹맘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농사짓는 남편을 소홀히 하였다.
영업 실적을 위해서 휴일도 없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승진을 할수록 접대 자리가 늘어나
하숙생처럼 생활하였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들 때 세상이 무너져 살기 싫었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가족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여자로써 자존심이 상해 무던히도 싸우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오랜 시간 방황을 하였다.
그 여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나보다 잘 난것도 없고 나보다 예쁜 것도 아니었기에 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남편이 떠난지 7년이 흐르면서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그 여자는 항상 가까이에서 농사일을 도와 주고, 좋아하는 막걸리도 서로 권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여행을 가자고 하면 기분좋게 동행했을 것이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그녀는 정년 퇴직을 하고 남편이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대추 농원에서 일을 돕기 시작하였다. 그해 가을 대추 축제를 한달 앞둔 어느날, 남편은 소화가 안 된다고 내과에 다녀왔다. 대추 수확에 바쁜 와중에 계속되는 소화불량을 그냥 넘겼다.
축제를 마치고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결과 췌장암이라며 시한부 3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그해 남은 대추는 포기하고 서울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힘이 없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이 볼까봐 숨어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나중에는 나오지 않았다. 3명의 자식들 혼사를 하나도 치르지 못했는데 큰 짐을 지어주고 떠나는 남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이 떠나기 며칠전 그녀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남편이 무척이나 미웠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문병 온 그 여자를 병실에 들이지 않고 험한 말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 여자를 못 본척 하고 7년을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가 있어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이제는 미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정다운 옛 친구였음을!
우리도 함께 늙어 가고 있음을!
인생의 황혼길에서 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녀는 오늘도 몸이 불편하여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 댁에서 맛있는 쑥버무리를 해드리며 편안한 얼굴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수필가 소개>
행코문학회 수필가로 등단한 유인숙 수필가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코교수단의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이다. 한국행복학회 회계위원장 및 연구원으로서 행복서포터즈를 조직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행복대학교 설립에 대한 꿈도 꾸고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학회 학습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현 직업은 보은읍에 있는 송원재가노인복지센터 대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