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청년 이병철이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길에 일본으로 가던 배를 타고 가다가 배멀리를 심하게 겪었다. 결국 청년은 배멀미가 덜한 1등석으로 가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세운뒤 50년간 회장으로서 37개의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했고 마침내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3대 경영 가치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라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었다.
호암선생은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하는데 썼다"라고 했을 정도로 1957년 국내 최초로 공개채용을 실시하였다. 그 당시 공개채용은 아주 특별한 발상이었다. 호암선생이 이렇게 훌륭한 가치와 비전을 세우고 삼성그룹으로 신화적인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한국전쟁 시절에 피란길에서 대구에서 양조장을 맡은 이창업이라는 성실한 시골 분 때문임을 간과할 수 없다.

호암은 ‘의인물용, 용인물의’ 즉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명심보감을 자주 인용했다. 호암 선생이 위탁경영을 맡겼던 양조장과 과수원을 이창업선생은 충실하게 경영하였고 단 1원의 사욕을 부리지도 않고 재산을 불려나갔다. 전쟁이 끝난 후 호암선생이 벌였던 사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 때 이창업선생이 모아둔 3억원이 상성그룹을 키워나가는데 큰 자본이 되었다고 한다.
이창업선생에게 양조장과 과수원을 맡기고 일체 수익을 따지지 않았던 호암선생의 인격도 고매하지만, 이창업선생도 호암선생에 못지 않은 신실함과 성실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결국 삼성그룹은 뛰어난 지략가인 호암선생과 탁월한 성실함으로 자기 사명을 완수한 이창업선생의 콜라보가 있었기에 오늘날 글로벌기업 삼성이 있게 된 것이다.
눈만 뜨면 남의 것을 사기치려고 하는 사기꾼들이 코인을 비롯하여 각종 돈벌이를 덫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결국 불행한 세상을 만드는 자들이다. 이러한 환난중인 생명자본시대에 호암선생이나 이창업선생 같은 훌륭한 분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또한 우리가 작은 호암선생이 되고 리틀 이창업선생이 되면 어떨까?

<글> 김용진 교수, 전)한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코교수단 단장, 한국행복학회 학회장, 행코문학회 회장, 은퇴한 파워시니어 웰에이징 캠프 전문 화율림 고문,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뉴스포털1'과 '한국공보뉴스'의 칼럼니스트이다. 주저로는 행복과 관련된 전문도서인 <행복지도사><행복교육사><행복상담사><행복 코디네이터><인문학 Symposium><행복특강의 핵심주제들><행복인생경영> 등이 있고 31권의 행복강사들을 위한 공동저서가 있다. 행코교수단과 한국행복학회를 통해 행복서포터즈 운동, 마을리더 행복멘토 입법추진, 행복대학교 설립 2030 비전을 차근차근 추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