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간 성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아간 성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 권경희
  • 승인 2023.04.08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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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1일 보건복지부는 <우리 아이들의 성행동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라는 주제로 아동권리포럼을 열고, <유아의 성 행동문제 관리·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배포했다.

매뉴얼은 유아의 성 관련 행동을 성인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해당 유아를 낙인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동권리포럼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강조되었었다. 매뉴얼 편찬과 아동권리포럼에 참여한 이완정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유아 성행동과 성인의 범죄 행동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령 행위 양상이 (성인의) 성폭력과 유사했다고 해도 맥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한 근거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피해 유아’와 ‘행위 유아’로 사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장형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소장)도 아동권리포럼에서 유아는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없고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언론 보도 등이 행위 아동을 성범죄자로 낙인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김봉석 교수는 쿠키뉴스를 통해 어른이 보기에 좀 지나치다 싶으면 자제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 과정을 성적 행동, 성폭력 치료가 필요한 행동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소아심리 전문가들이 한 언론 인터뷰 기사 일부
소아 심리 전문가들이 한 언론 인터뷰 기사 일부

그렇다면 전문가와 보건복지부가 편찬한 매뉴얼은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유아의 성 행동문제 관리·대응> 매뉴얼은, 유아의 성행동은 성폭력이 아니니 낙인찍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정의 내리고 만든 것이다.

매뉴얼에는 유아의 성 행동 수준을 ‘일상적인 수준’, ‘우려할 수준’, ‘위험한 수준’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매뉴얼의 ‘우려할 수준’과 ‘위험한 수준’을 성적 행위나 성폭력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아의 성행동을 성인의 관점으로 봄으로써 매뉴얼의 취지와 내용을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전문가 타이틀이 불러온 위험”

성교육 강사 또는 아동 관련 시민단체 대표의 섣부른 언론 인터뷰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곤 한다. 단체명이나 프로필에 ‘성교육’ 또는 ‘아동’이 표기되어 있어, 일반인들은 그들의 발언을 전문가의 발언으로 믿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들은 성교육이나 아동 인권 분야라는 특정한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유아의 성행동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소아 심리에 대해 전공한 경력이 없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소개한 언론과 자신의 분야가 아님에도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섣불리 진단하는 것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되려면 정신과 전공과정을 거친 후 소아·청소년 파트의 전공과정을 또 한 번 거쳐야만 한다. 이는 성인과 소아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아의 심리 발달에 대한 이해는 깊은 지식과 연구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 발언할 시에는 전문가의 의견이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토대로 정보 전달을 하거나 의견을 덧붙이는 정도여야 한다. ‘의사’라고 하여 안과 의사가 위암 검진을 하지 않고, 산부인과 의사가 뇌 수술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 함부로 ‘진단’을 하는 것은 위험한 선을 넘은 것이다.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아동을 만나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가정일지라도 섣불리 진단하는 것도 주의가 필요하다. 하물며, 유아의 발달과 심리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성교육 강사나 아동 인권 단체 관계자의 발언은 어떠하겠는가?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발언. 그 발언으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아동들이 조롱과 비난 속에 노출된다면 그 책임도 그 발언자들이 질 것인가?

그들의 발언으로 인해 내 아이가 피해 아동 또는 행위 아동이 될까 봐 불안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불안감은 곧 조기 성교육의 관심으로 이어지지만, 조기 성교육보다 어른들이 먼저 유아의 성행동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먼저이다.

유아는 성인의 ‘성’과 완전히 다르다고, 낙인찍는 것은 ‘2차 가해’라고, 피해 아동과 행위 아동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모여 올바른 대응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러나 매뉴얼의 취지와 내용을 역행하는 언론 보도와 전문분야가 아닌 사람들의 제멋대로 인터뷰로 인해 아동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보육현장은 교육과 중재가 아닌 불안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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