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 인천에 사는 초등학생 5학년 아동이 계모와 친부의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로 사망했다. 의사 표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안타까워했다.
“왜 아이는 말하지 않았을까?”
김태경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학대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다면 도움을 청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는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해 믿을 만한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왜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조성하지 못했을까’에 대해서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친모는 남편의 외도와 폭력으로 이혼했다. 경제력 등의 이유로 친부가 양육권을 가졌고, 친모는 면접교섭권을 통해 한 달에 두 번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이혼 당시만 해도 친부는 아들에게만은 좋은 아빠였다고 한다. 하지만 친부는 이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가정을 만들었고, 친부와 계모는 아이가 친모를 만나는 것을 차단했다.

친모는 아이가 보고 싶어 학교로 아이를 만나러 갔지만, 아이는 예전과 달리 친모를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부와 계모는 면접교섭권을 방해한 것에 대해 사과는커녕 아이를 만나지 말라며 친모를 윽박질렀다.
친모는 면접교섭권만 지켜졌어도 아이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했다. 이처럼 면접교섭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이 사건 외에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흔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다.
9년 전인 2013년 10월 울산에 사는 초등학생 2학년 아동(서현)이 친부와 동거녀의 학대로 갈비뼈가 16개가 부려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엄청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당시 유가족이던 친모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이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었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서현법)」이 통과되기도 했었다.
남인순 국회의원, 정익중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 ‘이서현보고서’에 따르면, 이혼 당시 친부는 ‘엄마가 죽었다고 할 테니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서현이의 친부와 동거녀는 잦은 이사를 했고, 친모가 아이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했다. 주 가해자였던 동거녀는 아이의 친모 행세를 했고, 이웃, 유치원, 학교,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동거녀를 친모로 알고 있었다. 특히, 이웃과 학교에서는 동거녀를 교육열 높은 좋은 엄마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현이를 추모하면서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는 친모를 향해 온갖 욕설과 비난을 쏟아내었다. 친모를 향해 공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비난하며 조롱한 것이었다. 면접교섭권의 현실적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해 버렸다. 4년 동안 아이를 만나지 않은 사실 한 가지만 떼어내어 친모를 ‘악마화’하고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일이 서현이를 추모하고 아동학대 근절을 표방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버젓이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이혼가정과 면접교섭권의 실태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책임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면접교섭권을 방해하면,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양육 부모가 만남을 막더라도 법적 절차를 실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혼 후 前(전) 배우자에 대한 반감이나 우울증으로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사건들마저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건이 아닐지라도 부모의 이혼에 이어 계속된 갈등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어 상대방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아이를 이용하여 비양육 부모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고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인천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는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 근거를 만들었고, 끊임없이 친모를 만나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아이가 비양육 부모와의 만남을 거부하면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말뿐인 약속, 면접교섭권”
결국, 면접교섭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양육 부모가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취할 방법은 딱히 없다고 봐야 한다.
2023년 3월 24일 방송한 KBS <시사직격>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면접교섭권에 대해 심층취재 했다. <시사직격>이 취재한 비양육 부모들은 면접교섭권 방해 뒤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혼 초기에는 면접교섭권이 보장되었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가 양육 부모의 눈치를 보더니 만남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양육 부모가 자녀 앞에서 비양육 부모를 험담하거나 만남을 거부하라고 강요하면 면접교섭권이 이행되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면접교섭권 방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면접교섭권은 비양육 부모의 권리이기 이전에 자녀의 권리이고, 이를 방해하는 행위는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제성 있는 제도 마련과 더불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면접교섭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미리 점검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잘못이라고 했다. 9년 전 사회적 공분이 컸던 사건. 서현이가 사망했을 때, 아이는 살리지 못했어도 우리 사회가 면접교섭권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또 다른 서현이는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칠곡아동학대사건(영화 ‘어린 의뢰인’), 평택아동학대사건(원영), 천안아동학대사건(2020/가방감금), 인천아동학대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원 B씨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분노 대상을 찾아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아요. 사회적 편견, 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보아야 아이를 살릴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