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낙타, 조성식 시인 '핏빛 너울꽃'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윤일선 ] 
핏빛 너울꽃 -조성식-
바람과 시간도 삼복더위 피하여 찾아든
백운산 어치계곡, 그늘이
먼저 목 좋은 곳, 자리 깔고 앉아 반긴다
물은 하얀 게거품을 물고
돌무덤들 같은 바위들을 옮겨보려 하지만,
흩어졌다 또 다시 일어섰다
쉼 없이 부딪치고 스러지면서도
먼 산골짜기, 한적한 한 귀퉁이에 눌러앉지 않고
섬진강을 향해 흘러가는 것은
핏빛 너울꽃으로 피어나
남해 까치놀 속 한 우주로 잦아들기 때문이리
조성식 시인: 1961년 전남 무안 출생. 『아시아서석문학』 시부문 신인상 등단. 광주문협. 국제 펜클럽한국본부 회원. 시낭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조선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근무.
詩評 -강대선- 시인
시인은 삼복더위를 피해 백운산 어치계곡의 그늘에 앉아 있다. 이곳은 시인에게 일상의 더위를 식혀 주는 반가운 그늘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시인은 “쉼 없이 부딪치고 스러지면서도/먼 산골짜기, 한적한 한 귀퉁이에 눌러앉지 않고/섬진강을 향해 흘러가는”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물을 바라보면서 삶의 사유를 길어 올리는데 시인에게 물은 먼저 아픔으로 다가온다. 물이 부딪치고 스러지듯 시인의 삶도 부딪치고 스러지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아픔은 헛된 아픔이 아니다. 계곡물이 아픔을 딛고 보다 더 넓은 섬진강을 향해 흘러가듯 시인이 삶도 보다 넓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자는 물을 덕德에 비유한다. 두루 베풀어 사사로움이 없으니 덕과 같고, 물이 닿으면 살아나니 인仁과 같다. 낮은 데로 흘러가고 굽이치는 것은 모두 순리에 따르니 의義와 같고, 얕은 것은 흘러가고 깊은 것은 헤아릴 수 없으니 지智와 같다.
백 길이나 되는 계곡에 다다라도 의심하지 아니함은 용勇과 같고, 가늘게 흘러 보이지 않게 다다르니 살핌과 같으며, 더러운 것을 받아도 사양치 아니하니 포용함과 같다. 혼탁한 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하여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정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 같고, 만 갈래로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이니 의지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 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볼 뿐이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으뜸가는 선을 물에 견준 일이 있다.
물은 언제나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인이 물을 바라보는 일은 보다 넓은 삶의 깨달음에 다다르는 일이다. 섬진강을 향해 흘러가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러 ‘핏빛 너울꽃’으로 피어나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시인도 일상의 힘겨움과 어려움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해 까치놀 속 한 우주로 잦아들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지금의 힘듦은 보다 넓은 바다로 잦아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자리, 낮고 겸허한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넉넉한 웃음으로 환자들에게 흘러들 시인의 바다가 푸르고도 넓다. 이 가을, 까치놀이 물든 시인의 바다를 공자님 말씀처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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