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낙타 , 허형만 시인 '가벼운 빗방울'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윤일선 ] 
가벼운 빗방울 - 허형만-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매달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에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래도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 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에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래도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 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허형만: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1973넌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타는 얼음』 『그늘이라는 말』 『영혼의 눈』 『가벼운 빗방울』 등 15권의 시집이 있음. 현재 목포대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詩評 -강대선-
사무치는 가벼움
이 시를 대하고 공자님이 말씀하신 사무사(思無邪)를 생각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릇 시란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시란 바로 이런 시를 말할 것이다. 시인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시인은 비가 갠 후에 빗방울이 매달려 있는 것에 눈길을 준다. 그런데 빗방울은 여기저기 매달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매달린다.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매달릴 수 있는 이유는?
시인은 ‘가벼움’을 직시한다. 제 안에 무거움을 두지 않는 것이다. “무거움 속에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란 표현에서 시인에게 가벼움이란 다른 무엇에 매달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벼움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무거움을 털고 매달려 있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뒤돌아본다. 자신 안에 있던 무거움을 바라보는 것이다. “수 만리 마음밖에서”,“터지는 우레소리에”,“무거운 무게만큼” 매달렸던 자신의 모습을 아프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시 ‘녹을 닦으며(공초14)’에서 보여지는 ‘손가락이 부르트로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는 수신(修身)으로서의 자기 성찰 과정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나 또한 이제 가벼운 나이가 되었노라고” 일흔의 나이에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무거운 욕망을 벗어 던지고 어디든 매달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그래서 나의 시는 어디에나 매달릴 수 있는 빗방울처럼 누구에게나 매달리는 사무치는 문장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의미 있는 다가섬을 시인은 ‘매달린다’로 표현하고 있다.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매달려 그의 사무치는 문장이 되고 싶은 시인의 고백인 셈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비인간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나라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낸다.
아프고 마른 나무에 그의 시가 한 방울의 생명으로 스며들길 소망한다.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자신을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길을 가는 성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은 이미 가벼운 빗방울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 매달려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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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힘 빼라는 詩, 평생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든 힘을 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