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가장 오래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 일이다. 덕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반복 또 반복할 때 만들어진다. 요즈음 국제웰빙전문가협회에는 진정으로 존경받는 훌륭한 리더들이 행코 책임교수로 진입하고 있어서 너무나 감동이다. 일생동안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훌륭한 분들이 행코교수단을 채워나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존 녹스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중세 종교개혁운동의 선두주자였던 존 칼빈의 가장 훌륭한 제자였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이, 플라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손꼽히는 제자였듯이 말이다.
존 녹스는 31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가 40살이 되던 해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죽었다. 존 녹스는 가정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고 그 아픔을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이겨나갔다. 존 녹스의 집필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이 죽은 뒤 그 쓸쓸함을 마음의 양식이 될 양서를 집필하는데 15년간 매진하였고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존 녹스는 평소에 자신의 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늘 죽음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인생을 경영했다. 그는 무덤에 묘비명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죽자 그의 유언대로 공동묘지에 비석도 없이 장사되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에는 존 녹스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조문객들로 넘쳐 났다. 그의 기일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은 존 녹스의 무명묘를 찾아와서 헌화하고 존 녹스를 추도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어땠을까? 모차르트는 4살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한 음악의 천재로 손 꼽히는 예술가이다. 그는 유럽 전역에서 초청을 받았고 눈코뜰 사이가 없을 정도로 바쁘게 순회 연주회를 개최했다. 모차르트에게는 늘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와 응원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교황도 모차르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35세에 요절하고 나서 그의 장례식은 존 녹스와 완전 딴판이었다. 평소에 모차르트에게 보냈던 그 많은 관중들의 그토록 뜨거운 함성이나 응원의 행렬은 아예 없었다. 진눈께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몹시 추운 날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장례식에는 유가족도 없었고 조문객도 단 한명도 없었다. 단지 모차르트의 시신을 땅에 묻는 단 한 사람의 묘지기만 쓸쓸히 있었을 뿐이다.
존 녹스와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왜 이리도 큰 차이를 보였을까? 모차르트는 명성을 얻기에 분주했지만 존 녹스는 덕을 쌓는 삶에 치중했던 까닭이다. 행복인생경영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사례이다.

<글> 김용진 교수, 전)한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코교수단 단장, 한국행복학회 학회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유튜브 '인생이모작 행복 코디네이터' 크리에이터, 한국공보뉴스 칼럼니스트로서 국제웰빙전문가협회를 통해 행복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투 트랙(대학교에 행복교과목 또는 행복관련학과 개설 등 지원, 마을리더 행복멘토 직무교육 의무화 입법 추진)을 실현해 가는 중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