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웰빙전문가협회 김동호 사무총장은 “2일 저녁 한국행복학회 학회장 김용진 교수는 충청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온라인 행복인문학 특강에서 ‘생명자본주의 정신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눈길을 끌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지구촌은 최대한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자본주의자들의 식민지가 되면서 무제한의 파괴 과정을 겪었고 그로 인해 심각하게 몸살중이다. 그 몸살의 증거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환경오염을 비롯한 파괴적인 기상이변 현상이다.
21세기 과학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 쓰나미 같은 환경재난이다. 그 원인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인위적인 남용으로 파탄시킨 이기심으로 병든 지식인들의 오발탄이 만든 보응이다. 결국 현대인들의 탐욕에 병든 지식은 산업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지구촌을 누비던 다양한 생명체들의 급격한 멸종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 다음 순서로는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게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한 인류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지식의 오만에서 벗어나 생명 가치를 극대화하는 지혜로운 삶이다. 그것을 고 이어령 박사는 ‘생명자본’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상황에 잘 맞는 말이다. 현대 과학인류는 순환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운동을 깔보았다. 그리고 인위적인 압박을 가하거나 자연법칙을 무시하면서 인공적인 설비와 시스템이 충만한 현대문명을 지구촌 위에 정렴군으로 가득 군림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파산 도박을 벌인 미친 것이었고 그 결과적으로 지구촌의 파멸로 치닫고 있다.
생명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통해 잉태되는 선물이다. 씨앗이 죽어야 발아가 되듯이 내가 죽어야 이웃이 산다. 이 정신이 기독교의 사랑이고 불교의 자비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무수한 죄인들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모범을 보이셨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매력적인 생명종교이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생명가치를 회복하도록 행복 코디네이터 운동을 벌여야 하는 것이 그 까닭이다.
현대 인류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지혜롭지 못한 결과를 추구하고 있다. 돈에 중독된 자본주의의 시녀가 된 기이한 지식이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기업만 아니라 학문의 전당까지 점령했다. 그리고 바벨탑처럼 귀족화 되어가는 교회나 사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생명이 최고가 아니라 돈이나 물질이 최고로 존중받는 맘모니즘(mammonism)이 미신집단만 아니라 고등종교 안에까지 깊숙이 자리잡았다. 이렇게 모조리 썩어들어가는 까닭에 인류의 지혜는 병들어가고 생명을 죽이는 잡다한 지식만 망나니의 칼춤처럼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이 시대 환난중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안을 제시해야 할까?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시킴으로 또 다른 생명을 잉태시키는 십자가 정신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십자가에서 보여진 모범이 곧 자연계의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순환법칙이다. 이것이 생명운동의 원리이다.
대한민국은 이웃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급격히 불통 세상, 극단적 대립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의 초가집 문화는 담장이 낮아서 이웃과 친밀한 소통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콘크리트 빌딩 구조인 아파트 문화가 정착되면서 이웃과의 소통은 단절되어갔고, 상생과 협력은 곤란한 생활습관이 고착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친구이고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나와는 상관없고 무관심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인 군상일 뿐이다. 이웃 사랑 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유지되기 위해서 부모와 조상의 DNA가 생명을 제공했고 자연의 공기와 수분과 영양소 그리고 저 머나먼 태양에서 빛과 에너지들이 무한대로 공급되어졌다는 이 기적같은 사실을 현대인들 상당수는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내가 생명을 안고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내 노력의 댓가와는 비교하지 못할 거의 무한대의 은혜를 받고 있음의 결과임을 말이다.
이제 목회자들은 생명을 자본으로 삼아야 함을 적극 가르쳐야 한다. 백의민족이 갖고 있는 평화정신과 순결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태극기의 원이 상징하는 치우침 없는 공평한 구분과 무한 순환의 상생함이 우리의 삶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웃 사랑정신과 다를 바 없다.
‘똥이 밥이다’는 말처럼,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똥을 영양소로 먹고 만들어낸 역동적인 선물들이다. 내가 지금 사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루 하루를 겸손히 감사하며 살리는 일에 힘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교인들의 행복을 코디네이터 하는 것이 목회의 목표임을 인정한다면? 목회자는 생명자본시대가 도래하도록 교인들이 실천해야 할 방법을 정확히 짚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가 가르친 주기도문의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마디로 ‘다함께 잘 살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감사하기, 존중하기, 나눔을 실천하기 그리고 이것들을 토대로 확대되는 ‘아나바다운동’(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운동)이다.
이러한 소소한 행동이 이 시대에 가장 큰 가치라고 여기는 것이 곧 생명자본시대를 열게 되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건전한 종교가 생명자본의 기본 정신을 깨닫고 행복서포터즈로 활성화 시켜 이웃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개인의 인성만 아니라 공동체도 회복되고, 지구촌의 암울한 현실도 일부분 해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