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부자가 오래 사는 길
[홍경석 칼럼] 부자가 오래 사는 길
  • 홍경석
  • 승인 2023.01.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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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없는 사람들에게

최근 ‘호남 최후의 부자’라는 의미심장의 글과 만났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의 고정 칼럼에서 본 것이다. 내용은 호남 제1 부자의 ‘부의 유지’ 비결에 관한 것이었다.

봉소당(鳳巢堂) 주손(胄孫, 둘 이상의 손자 가운데 맏이인 손자를 이르는 말)인 김재호(金在皓·81) 씨를 다시 만나 들은 이야기를 옮겼다. 참고로 여수 봉소당(鳳巢堂)은 대지면적 2,201평(7278㎡), 건물연면적 1,273㎡ 규모로 전남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가문의 영광'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이 저택의 소유자는 여수 히든베이호텔 대표 겸 여수 한영대학교 이사인 김재호 씨 소유라고 한다. 그는 지역에서 소문난 부동산 부자로 기업인이자 교육자로 알려져 있다.

1948년에 ‘여순사건’이 발발하자 당시 33세의 나이였던 이 집안 주손 김성환(1915~1976)이 여천군청으로 잡혀갔다. 군청은 말하자면 혁명평의회 본부였다. 따라서 공산당과 빨갱이들의 소굴이었다.

그런데 봉소당의 종 아들이었던 19세 ‘태주’가 빨간 완장을 차고 2층에 올라왔다. 그는 붙잡혀온 김성환과 호남 제2 부자 김영준을 감시하고 있던 2명의 보초병을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그리곤 신문만 계속 보았다. 30여 분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없이 신문만 보는 태주의 태도를 주시하던 김성환은 ‘이거는 도망가라는 암시구나!’ 하고 2층 창문을 통해서 군청 건물을 탈출하였다.

그렇게 도망간 김성환은 살았고 2층에 남았던 김영준은 다음 날 총살당하였다. 그럼 태주는 왜 대지주였던 김성환을 살려주었을까? 오히려 보복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다. 김재호 씨의 부언이 이를 증명한다.

“증조부대(代)에 30여 명 되는 노비들을 다 풀어주었습니다. 노비문서 불태우고 ‘너희들 다시는 우리 집 문지방을 넘어오지 말아라’고 했죠. 각기 논 10마지기 밭 7마지기도 나누어 주었고 집도 지어 줬습니다. 이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시는 분을 자주 취재한다. 그런데 그 대상은 십중팔구 나와 같은 서민층이다. 부자, 즉 잘 사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다.

언젠가 경주 여행을 간 김에 ‘경주 최부잣집’을 찾았다. 그 집안은 무려 3백 년 동안이나 만석꾼의 지위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그 같은 부의 견지 노하우의 비결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현재의 부를 철저하게 사회에 환원한다는 어떤 원칙의 준수에 있었다.

당시 흉년이 들면 빈농들은 가지고 있던 논마지기를 시세의 10분의 1 가격에 내던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추 최부잣집은 그러한 남의 고통을 매개로 한 치부엔 한 눈조차 팔지 않았다.

다른 부자들은 그같이 헐값으로 논과 땅을 매입하여 재산을 증식했으나 후일 동학혁명이 일어나면서 떼죽음을 면치 못했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내가 배를 곯고 있는데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사 주면 이는 평생의 공덕이 되기 마련이다.

경주 최부잣집이 다른 부자들처럼 빈자의 고통을 아랑곳 않고 재물만 증식하는데 몰두했다면 지금껏 명성이 회자될 수 있었을까? 사적 영역이지만 S시로 이사를 간 지인이 있다.

순전히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갔다. 처음엔 하루가 다르게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면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월 1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2년 12월 전국 주택 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S시가 하략률이 무려 -17.12%에 이른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얼마 전 대전으로 유턴했다. 부자가 오래 사는 길은 무엇일까? 남에게 베푸는 거다. 기왕이면 없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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