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일러가 있어도 기름값 무서워 전기장판으로 온기를 찾고 TV시청으로 저녁 빛을 대신 노인만 남은 시골 사정 실감 도움의 손길 없어 안타까워
"어디에서 나오셨소?"
인구주택총조사 요원인 강애경씨(42·여)가 주택을 방문하여 생뚱 맞게 듣는 첫 소리다. 강씨는 통계청에서 나왔다는 말을 주민이 알아듣지 못하자 또다시 몇 번을 설명했으나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강씨는 '군이나 면에서 나왔다'고 해야 알아주는 시골 인구주택총조사 요원이다.
강씨는 지난 10월 사이버교육과 군내에서 실시한 조사원 지침 교육을 통해 인구주택총조사 요원으로 발탁돼 11월 1일부터 장성지역 120세대를 맡아 방문면접조사를 실시했다. 15일간 68만2천560원을 받으니 용돈벌이 치고는 꽤 쏠쏠하다.
올해로 18회째 맞고 있는 인구주택총조사는 1960년 이후 5년마다 실시해 제10차에 이르고 있다. 강씨가 조사하는 항목은 인구,가구,주택에 대한 19항목의 기본특성을 묻는 전수조사와 아동보육, 교통수단, 경제활동 등 심층적인 31항목을 묻는 표본조사로 분류돼 총 50문항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통계청은 조사요원 11만명중 95%를 강씨와 같은 아줌마들로 조사요원을 뽑았다. 거부감이 덜하다는 긍정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올해는 인터넷 참여율이 높아 조사요원 한명당 100내지 200가구 정도로 지난해 보다 절반정도로 줄었다. 한명당 하루에 15가구 정도를 방문하면 일이 끝나지만 도시 경우는 문전박대가 심해 쉽지 않다는 것이 조사요원들의 하소연이다.
그나마 시골 사정은 도시에 비해 조금은 나은 편이다. 문전박대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강씨는 이번 주택총조사 요원으로 활동하며 지역민의 어려움과 그동안 알고 있던 시골 인심의 착오를 이야기 했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오전 8시에 집을 나선 강씨는 겨울나기에 힘겨워하는 시골 노인집을 우선 방문한다. 보일러가 있어도 기름값 무서워 전기장판으로 온기를 찾고 TV시청으로 저녁 빛을 대신하는 집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한다.
강씨는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며 노인만 남은 시골 사정을 전했다. 가진 것 하나 없어 지역에 도움을 요청해도 자식들 소유가 서류상 어르신들 앞으로 되어있어 도움을 받을수 없는 처지의 딱한 노인들도 많다.
보통의 시골 인심을 생각했던 강씨. “집 한 채와 농사로 짓는 논밭은 적을지라도 먹고 살기는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방문조사는 강씨에게 생각 자체를 바꾸게 했다. “봉사도 많고 사랑의 손길도 많은 요즘 정작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사원 일을 통해 자식에게 생생한 현장 교육을 시킨 것도 소득이다. 어머니를 도와 방문조사에 동참하게 된 김모(중3·여)학생은 조그만 방에 춥고 힘들게 사는 어르신들을 보며 “엄마, 나 우리 집을 사랑하게 됐어. 이사 안 갈래”라며 전학을 희망했던 불만의 소리가 쏙 들어갔다.
아들 또한 “특별한 말은 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생각했던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과 조사원인 엄마를 따라다니며 직접 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달라 느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지역의 특성상 농번기인 요즘 주간에 가정을 방문 조사하다보면 헛걸음일 때가 많다. 그래서 강씨는 주로 저녁에 방문한다. 밤길이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방문조사에 나섰으나 “자녀들에게 생각지 않던 교육효과를 봤다”며 흐뭇해했다.
강씨는 이번 활동을 통해 “이곳에서 10여년을 살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조사원 활동을 통해 주민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역민들의 실생활까지 알게 된 것 같아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 조사원들에게 문턱을 낮춰주세요'라는 인구주택총조사의 안내문이 홍보성으로 끝나지 않고 진실한 공공행정을 위한 조사가 되길 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진경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