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웰빙전문가협회 수도권 행코교수단 회장 홍병옥 행코 책임교수는 "수도권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인 임문길 목사님이 지난 23일 군 장교 전역후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말씀교회(화성시 병점1로 216-21. E타운 쓰리빌딩 706호예장 대신)에서 경북 상주시 화서면 지산리를 중심으로 태동한 양양임씨 종친회 총회를 개최하여,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종친회 문화를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소통중심의 체제로 구축하였다. 이는 양양임씨 종친회와 이사회가 종친회에 대한 시대를 앞서는 모범 사례를 국내 최초로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소개했다.
양양임씨 종친회장으로 선출된 임문길 목사는 "우리 종친회 선조가 본관을 양양으로 한 것은 약120여년전이다. 그러나 원시조는 기원전1100년 중국 은나라 태정대왕의 후손 임견이다. 그리고 중시조는 임몽주(충선공 평찰품사)이며 14세손 자번장군(정2품장관급)의 예천임씨 양양군파에서 양양을 이름으로 1900년경 경북 상주시 화서면 지산리에서 26세손 임정학자께서 25세손 기하,재하,성하 자손들 중심으로 본을 양양으로 호적에 등재하여 자리 잡은 성씨로 맥을 이어 왔다. 그렇지만 양양임씨가 호적에 공식 등재된 이후 120여년간 후손은 50여 가정들로 번창해 왔다"고 소개했다.
종친회 수석부회장으로 추대된 임인진 교감은 "양양임씨가 숫자가 많지 않지만 종친회 종손 및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종친회 총회를 하게 되었다. 금번 종친회는 큰 특징을 갖는다. 그 특징으로 제3조 목적과 비전에서 왕자비간공의 혈통계승, 시조 임팔급의 개척정신, 자번 장군의 애국심, 효자공의 효심, 후손의 번창을 위한 장학위원회 발족,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시민으로서 시대적 사명감이기도 한 인권평등과 남녀평등문화 정착 등으로 되어 있다. 종친회 목적은 이러한 종친회의 문화를 후대들에게 계승 시키는데 목적으로 금번에도 28세손 임상길 원장(담곡서예학원)과 29세손 임무상 박사(농림부 이사관 퇴직)께서 강론하셨다. 여기서 인권평등은 종친회 문화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가 제5조 방침 3항에 선조들의 제사는 각자의 종교법에 의거 자신의 신앙에 따라 자유롭게 제사를 드린다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4조 종친회 회원의 자격에 있어서도 양양임씨로 호적에 등재된 모든 사람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정회원이며 심지어 어린이로부터 모든 학생이 정회원이라는 것이다"라고 양양임씨 종친회 총회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양양임씨 종친회에는 이번에도 다수의 학생이 참석하여 참석수당으로 각기 5만원을 받았고, 입학시 축하장학금으로 초중고는 10만원, 대학교는 30만원을 지급하며 건강한 국민으로 잘 자라가기를 기원하고 축하하였다. 또한 종친회를 비영리법인으로 등기용 등록번호를 신청하기로 결의하여 합법성, 투명성, 공정성으로 운영된다라고 제5조 방침 7항에 명시 하였다. 회칙 제6조 조직 및 임원에서 이사회와 종친회를 구별하여 이사회는 부동산, 제사문제를 다루기로 하였고 종친회는 유교문화를 벗어나 각 개인의 자유로운 문화에 맞게 재미있고 즐길수 있는 축제의 종친회로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친목을 통한 유대관계로 하나됨에 목적이 있다고 명문화 하였다.
임무상 박사는 "앞으로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성씨의 종친회가 활성화 되어, 국가에서 다자녀출산 정책과 효문화 확산, 행복나눔운동 등에도 이바지 하는 종친회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양양임씨 종친회가 모델 사례가 되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양양임씨 종친의 산역사를 60년간 지켜 본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김용진 교수는 "대한민국에 웰빙문화를 가장 잘 실천한 가문이 바로 양양임씨 가문이다. 양양임씨 출신들은 한결같이 공동체를 존중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행복나눔을 실천한 가슴이 따스한 분들이다. 우리 부모님이 60여년전 상주 화서면 지산리, 내 친구 임홍길 사장 부모의 집 바깥채에 몇 년간 머물렀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가문이 양양임씨와 청도김씨 가문이다. 내 친구 임인진 교감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부침개나 먹을 것이 생기면 그릇에 담아 조용히 "용진아!"를 불러 담장너머의 배고픈 우리 식구들에게 종종 나누어 주었던 정겹고 고마운 추억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가장 큰 재산이고 노동력인 일소를 우리 부모님께 언제라도 빌려주어 부모님이 산비탈을 갈아 농사를 짓도록 매년마다 도움을 주었던 임무상 형님의 인자한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은 내 어머니 김성연 권사님이 평생 언급하셨던 일로서 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양양임씨 가문의 후손들께 고마움을 표한다"라고 양양임씨 가문에 관한 경험담을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