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탁월한 성악가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카루소의 컴백'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20세기 최고의 테너 카루소를 회상한다. 하지만 카루소가 세계적 성악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선천적 자질보다도 어머니의 격려와 자신의 중단없는 열정과 지구력 덕분이었다.
카루소는 1873년 나폴리 슬럼가의 가난한 술주정뱅이의 7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카루소를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학력은 없지만 어머니 안나 발디니는 아들 카루소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고 날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넣어주었다. 카루소는 10세때부터 공장에 취직했고 야학에 참석하여 성악의 꿈을 이야기 했다가 야학 선생으로부터 크게 핀잔을 받았다. "너는 성악가가 될 꿈은 아예 포기하거라! 네 목소리는 문풍지가 떠는 소리처럼 형편없단 말이다!"라고...
이렇게 음악선생에게서 성악가의 자질이 없다고 핀잔을 들은 카루소를 어머니는 품에 꼬옥 끌어안고 격려해 주었다. "카루소야! 너는 반드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거야. 우리 같이 기도하면서 노력하자구나!" 어머니는 이후 3년간 카루소가 성악을 공부하도록 막노동판에 나가서 일을 하여 카루소를 음악 학원에 보내 주었다. 하지만 카루소가 15세가 되던 해에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과로와 질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베르지네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베르지네는 카루소의 슴은 재능을 파악하고 무대에 세워 카루소를 이용해 수익을 챙기기 시작했다. 카루소가 노래를 부르고 받은 수입액의 대부분은 베르지네가 착복했다. 결국 카루소의 노예계약은 재판까지 이어졌다.

이후 성당의 솔로이스트로 활동하던 가련한 성악가 카루소는 다시금 공연무대에 조연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다양한 오페라에 출연하면서 성악가로서의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게다가 빈센초 롬바르디라는 지휘자를 만난 카루소는 전문 테너 성악가로서의 목소리로 업 그레이드 하게 되었다. 카루소가 푸치니의 새로운 오페라 '라 보엠'을 공연할 때에 푸치니가 직접 이 공연을 관람하고는 "자네를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셨군!"이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드디어 카루소의 전성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었다.
카루소가 24세에는 연상의 유부녀 동료 성악가 지아케티와 결혼하게 되었다. 지적이고 강한 의지를 가진 지아케티는 정열적인 여성이었고, 음악에 있어서도 그간 쌓아온 그녀의 지혜와 겸험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채 큰 무대에 선 젊은 테너의 실력을 계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졌고 두 아들을 낳았다. 이후 아내는 카루소를 떠났지만...
그러나, 카루소는 칠레아의 <아를르의 연인> 초연, 조르다노의 <페도라> 등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었고 1898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을 가졌다. 카루소는 데뷔한 지 5년 만에 토스카니니가 지휘를 맡은 ‘오페라의 성역’이라 불리는 라 스칼라에 입성했다. 이후 상승세를 얻은 카루소는 1918년에만도 15만 4천 달러의 세금을 낼 정도로 유명 성악가가 되었다. 그가 늑막염으로 48세에 요절하기까지 세계 무대를 누비며 성악가로서 분주히 살아간 카루소! 레코드에 세계 최초로 녹음된 사람이 바로 카루소였다. 카루소는 죽었지만 지금도 레코드를 통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행복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생을 철저히 경영하여야만 한다. 행복도 누군가의 멘토링을 받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카루소를 유명 성악가로 만든 최초의 행복 코디네이터는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지구력으로 끝까지 인내한 카루소 본인이었다. 그 외의 스승들은 하늘이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덤으로 보내주는 선물이었다. 행복 인생 경영에서도 누군가를 만나는가가 참 중요하다. 숱하게 많은 사람을 죽인 로마의 폭군 황제 네로! 그의 어머니는 살인자였다. 하지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는 경건한 청교도였다. 자녀는 어머니가 그려가는 한 폭의 그림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숱하게 많은 제2 제3의 카루소가 희망멘토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그들을 세워주는 일을 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인가? 당신이 행복 코디네이터가 될 것인가? 당신이 선한 어머니, 행복 멘토링을 하는 행복도우미가 되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면 안될라나?
<글> 김용진 교수, 전)한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코교수단 단장, 한국행복학회 학회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유튜브 '인생이모작 행복 코디네이터' 크리에이터, 한국공보뉴스 칼럼니스트로서 국제웰빙전문가협회를 통해 행복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투 트랙(대학교에 행복교과목 또는 행복관련학과 개설 등 지원, 마을리더 행복멘토 직무교육 의무화 입법 추진)을 실현해 가는 중에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