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詩] 얼음새꽃
[이상렬詩] 얼음새꽃
  • 윤일선
  • 승인 2015.09.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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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낙타,이상렬 시인 '얼음새꽃'
얼음새꽃     -이상렬-

경칩이 지난 이틀 늦 오후
평두메 골짜기, 볼라벤 욕정의 끝이 여전한 이곳은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디인가

저승사자 손에 잡히기라도 한 듯 무너진 나무 넘고
마른 가지 사이를 지나다 만난
바람의 그늘을 쓰다듬고 초연히 흔들리는 변산바람꽃,

그 하얀 바람 타고
나는 어느 생으로 흐르는가

흐르다 돌아선 몇 발자국
돌 문턱 지나다 넘어질 듯 그 자리,
꽃자리 말씀.

“오르면서 못 보았지, 그래서 불렀어!”
낙엽과 돌과 얼음을 뚫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귀환환 그녀

샛노란 아기 눈망울로 바라본다
그녀는 다시 또 이렇게 돌아오는데
나는 그 씨앗을 놓친 걸까

이상렬 시인: 전도 완도 출생으로 광주고,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한국문학예술가협 회원원, 광주문인협의원으로 꾸준히 활동하시다가 지난해 펜을 놓았다.

詩評 -강대선- 시인

죽음에서 귀환하는 변산바람꽃


詩人 강대선
경칩이 지난 후 태풍 ‘볼라벤’이 휩쓸고 지나간 평두메 골짜기에서 시인은 죽음의 언저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일까.
 
무너진 나무들 사이에서 문득 만난 변산바람꽃은 초연하게 흔들리고 있다. 죽음과 생이 한데 섞인 이곳에서 시인은 자신의 생을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고.

마지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이른 나이에 요절한 누이를 슬퍼하는 월명사(月明師)처럼 시인은 자신의 예감된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시인은 걷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죽음은 ‘무너진 나무’이고 생은 ‘변산바람꽃’으로 대변된다.
 
시인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던가. “흐르다 돌아선 몇 발자국 돌 문턱 지나다 넘어질 듯”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위태한 시인의 발걸음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생과 사의 길에서 생의 부름을 간절히 염원해 보는 것이다.

그 때 시인은 ‘꽃자리’가 말씀 하시는 것을 듣는다. “오르면서 못 보았지, 그래서 불렀어!” 시인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실상은 시인 자신이 깨달고 있는 것이다. 고운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처럼 시인이 놓치고 있는 생은 무엇일까.
 
죽음을 이기고 다시 생으로 돌아온 ‘변산바람꽃’이 마치 요절한 누이가 다시 살아나 ‘월명사(月明師)’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꽃으로 피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생으로 왔노라고. 시인의 깨달음은 ‘귀환’이란 시어를 통해 형상화되어 있다.
 
‘귀환’이란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에게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생으로 귀환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귀환의 과정에서 “나는 그 씨앗을 놓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시인에게 생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것은 ‘씨앗’이다. 다시 생으로 올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씨앗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인이 말하는 ‘씨앗’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다시 이 생으로 돌아올 ‘의미’일 것이다. 시인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시인은 꽃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에서도 시인의 얼굴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생에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가슴에 씨앗을 심어 달라고. 그러면 나는 고인이 된 시인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시 여기 이렇게 ‘귀환’하셨군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변산바람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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