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미리 쓰는 유언
[홍경석 칼럼] 미리 쓰는 유언
  • 홍경석
  • 승인 2023.01.08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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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보다 내가 먼저 가리다

2013년으로 해가 바뀐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친구는 벌써 갔다. 달력의 첫 장에 그 친구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고인의 영정 사진에서 친구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터지는 오열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통곡했다.

“다들 멀쩡한데 왜 너만 먼저 갔니?” 울면서 절을 하자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상주에게 맞절을 할 때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망자의 남편과 아들이 절을 마치며 와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당연히 와야지요!” 친구가 투병 생활을 한 지는 얼추 10년도 더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갈수록 병세가 악화된 친구는 결국 치매까지 걸려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유로 인하여 가야만 하거나 보내야만 하는 곳이 바로 노인 의료복지시설인 요양원과 요양병원이다.

현재 전국의 노인 의료복지시설은 79,382개소(2020년 기준)이다. 노인 요양시설은 2008년에 1,332개소였으나 2019년에는 3,604개소로 270.6% 증가하였다.

또 노인 요양 공동생활 가정은 2019년에 1,939개소로 2008년에 비해 459.5%가 증가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고령사회이다. 노인 인구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여 멀지 않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비율의 20%를 넘게 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내년이면 나도 빼도 박도 못하는 ‘65세 열차’에 오르게 된다. 딱히 아픈 데는 없다. 비록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나가긴 했지만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분만큼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2013년 1월의 첫째 주에 영면한 친구는 고향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여자 동창 친구였으며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을 한 번도 안 했기에 어렸을 적의 추억은 건질 게 없다.

그러다가 나이를 더 먹어 동창회를 하게 되면서 만나기 시작했다. 평소 착하고 소심하며 나설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아무튼 거의 10년 전에 초등학교 동창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그 뒤를 따른 것이다.

문상을 마치고 나오니 고향에서 온 초등학교 동창들이 술과 밥을 먹고 있었다. 친구들이 술을 권했으나 한 잔도 안 마셨다. 술을 먹었다가는 필경 만취할 것이고, 그러면 또 울고불고하는 따위의 경거망동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간다. 삼도천(三途川)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이다. ‘삼도내’라고도 하는데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에 이곳을 건너게 된다.

이 내에는 물살이 빠르고 느린 여울이 있어, 생전의 업(業)에 따라 산수뢰(山水瀨)· 강심연(江沈淵)· 유교도(有橋渡) 등 건너는 곳이 세 가지 길이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량한 사람은 보화가 덮인 다리인 유교도를 건너게 되고, 죄가 가벼우면 잔잔히 흐르는 산수뢰를 건너게 되며, 죄가 무거우면 급류가 흐르는 강심연을 건너게 된다고 한다.

요단강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저승의 강을 의미하며, 중음(中陰)은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생의 몸을 받아 날 때까지의 영혼의 상태로, 중유(中有)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슬프다. 그것도 친구라고 한다면 그 슬픔의 깊이는 바다보다 깊다. 사람은 누구나 바람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다가 죽는 복이라도 누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희망을 지니고 있는 까닭은 지난 시절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고 원하는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5가지를 가리킨다.

오복은 첫째가 수로, 인간의 소망이 무엇보다도 장수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로,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셋째가 강녕이며,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가 유호덕인데, 오래 살고 풍족하고 몸마저 건강하면 그다음에는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 있는 봉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종명은 죽음을 깨끗이 하자는 소망으로, 모든 사회적인 소망을 달성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한 뒤에는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편안히 일생을 마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나는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먼저 아내에게 사죄의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동안 이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만 시켜서 미안했소! 또 더 미안하게 당신보다 내가 먼저 가리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하고픈 유언이다.

“부족한 이 아빠가 너희들한테 해준 건 없고 되레 폐만 끼치다 가는 구나. 그렇지만 끝으로 부탁을 하나만 더 하마. 혼자 남을 네 엄마한테 니들 남매가 교대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내려와서 엄마랑 하룻밤 자고 가거라. 꼭 부탁한다!”

■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몇 번이고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의 극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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