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자는 대전을 일컬어 ‘노잼도시’라고 했다. ‘재미가 없는 도시’라는 뜻의 비하적 표현이다. 과연 그럴까? 이는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전에는 대청호와 보문산 등 유명한 산하가 연중무휴 삶에 지친 도시인을 위무한다.
성심당 빵과 전국 유일의 칼국수 축제로도 유명한 각종 신통방통한 맛의 칼국수 역시 입맛을 저격한다. 여기에 반드시 빠뜨려선 안 되는 것이 바로 자타공인 대전의 향토 서점인 '계룡문고'이다.

계룡문고가 문을 열었던 당시, 아들과 딸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이었다. 주말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계룡문고를 마치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했다. 그만큼 책을 좋아했고 많이 사랑했다.
세월은 여류하여 두 아이는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하여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와 손녀까지 내 품에 안겨주었다. 그사이 나는 다수의 책을 낸 작가와 병행하여 매일 글을 쓰는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6년 전 문을 연 지역의 자부심이었던 계룡문고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지역민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책을 먼저 구입한 뒤 계룡문고의 이동선 대표를 만났다.
이동선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임대 관리비 일부 감면으로 겨우 버티며 왔는데 이후에도 회복세가 전혀 없고 근본적으로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극심하며 독서량이 날로 급감하는 상황 속에 임대 관리비까지 올리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더불어 ‘영국의 독서 교육’ 책자를 인용하면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리 영국은 자녀가 어려서부터 ‘책과 관련된 경험’을 우리보다 훨씬 풍부하고 아주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풍성한 경험과 실천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를 모티프로 하여 이동선 대표는 지난 20년간 500여 회의 작가 초청 문화행사를 비롯해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 대상 서점 견학, 학교 독서 프로그램 후원, 부모와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 작은 도서관 설립 운영지원 등을 해 왔다.
특히 이동선 대표가 아이들과 어울려 격의 없이 활발한 독서토론을 나누고, 이에 독서삼매경에 흠뻑 빠진 아이들이 서점의 사랑방에서 아무렇게나 누워서 책을 보는 모습은 정말 신선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처럼 이 대표가 고육지책을 강구하고 적극 실천한 까닭은 명료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가정, 학교, 사회에서 하는 대부분의 독서교육은 감당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를 직시한 계룡문고는 20년 넘는 서점 견학을 통해 독서로 스마트폰을 역전 K.O시킨 것이었다.

최근 서울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보문고 광화문점 등을 '2022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서울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곳 중 미래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유산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보문고는 지난 1981년 설립하였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대전시민의 자부심이랄 수 있는 계룡문고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위기의 돌파구를 찾으면 어떨까 싶었다.
계룡문고는 내일이면 만 27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 있는 자리는 문경서적과 대훈서적이 있을 때부터만 해도 무려 34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또한 계룡문고는 해방 이후 또는 6.25 이후 70여 년의 향토서점 맥을 잇고 있는 서점이라 할 수 있다.
비단 교육 측면뿐 아니라 어쩌면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주장이다. 계룡문고가 당면한 존폐의 위기는 책과 계룡문고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픔의 불을 지폈다. 계룡문고 사태, 서울처럼 ‘미래유산’ 선정과 같은 방법으로의 돌파구는 과연 없는 걸까?

이밖에도 방법은 또 있다. 일본의 지자체들처럼 지자체가 서점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아이디어의 접목도 검토할 만 하다. 일본 지자체들의 지역 서점 지원 정책은 급격한 서점 수 감소에 따른 대응이다.
지난 2003년에 2만개가 넘던 서점은 지난해 1만 2천 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서점의 지형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따라서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지자체의 지역 서점 운영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지역문화진흥법에서는 문화행사를 지속하는 지역 서점을 지자체가 생활문화시설로 지정할 수 있고, 유휴 공간 사용 신청 시 무상 사용도 가능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높은 임대료 부담으로 인해 경영이 힘든 서점 유지를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 시민과 독자를 웃게 하는 지자체의 지역 서점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동선 대표는 그동안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월에는 독서문화 진흥 발전 기여 공로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계룡문고 초입에 걸린 이 현수막이 자못 을씨년스럽게 다가온 건 비단 나만의 감회는 아니었을 터.

오랜 기간 대전시민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졌던 계룡문고를 앞으로 독서교육의 장과 대전시가 지켜야 할 미래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 적극 지원하는 아이디어의 도출이 시급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책이 울고 있다. 서점과 도서관은 더 크게 울고 있다.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과거 철인들뿐만 아니라 미래학자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데 정작 우리나라 국민독서량과 문해력은 전 세계 꼴찌다.
이제 육체적인 양식의 경제에만 머물지 말고 정신을 키우는 마음의 양식, 예컨대 계룡문고를 비롯한 독서 생태계로 집중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본다. 이와 함께 명실상부 ‘문화가 강한 도시’라는 새로운 대전시의 위상 정립을 위해서라도 특단의 계몽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 정책은 의식주에만 머물러 의존심만 키우지 자립심이 오히려 없어지게 한다는 양면성이 이 같은 주장의 단초이다. 지역아동센터, 보육원, 각종 종합사회복지관 등과 함께 노인정,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 여기를 중심으로 독서복지로 가는 방법도 현실적이라고 본다.
책으로 생각을 키워 자립심을 키우고 어르신들은 치매를 예방하며 문화를 성숙하게 바꿔 드리는 등 긍정적 결과의 도출이 확실한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의 극복과 타파 차원에서라도 이제라도 발상을 바꿔야 한다.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상은 아무나 받나? 계룡문고 사태에 대한 슬기로운 해법의 도출이 시급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