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낙타, 변길섭 시인 '수건을 접다가'
수건을 접다가 -변길섭-
잘 마른 수건을 접는다
세로로 접고
가로로 접고, 접고
70년대 군대식 관물 정돈하던 실력으로
두께도 길이도 잘 맞추고
색깔도 어울리게 차곡차곡 쌓아두었더니
단정하게 잘 정돈되었다는
아내의 웃음이 깊다
아버지에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우리도 그렇게 접히면서 살아왔다
때로는
접히지도
정돈되지도 않은 날들이 그리운 것은
나이 들면
꿈보다 그리움이 더 아름답기 때문일 게다
(『문학에스프리』 2015.여름)
변길섭 시인:2007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 『잡초를 뽑으면서』 등이 있으면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詩評 - 강 솔(강대선)- 시인
일상의 삶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

시인은 잘 마른 수건을 접고 있다. 이 수건은 땀도 닦아주고 젖은 우리의 몸도 닦아주는 생활필수품이다.
다시 말하면 흔한 우리네 삶의 단면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70년대 군대식 관물 정리하던 실력으로’에서 화자가 건너왔던 과거의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인데 ‘색깔’까지 어울리게 쌓아두는 그의 손길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시인의 천진스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시인에게 아내는 ‘웃음이 깊’게 호응해 주고 있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했던가. 웃음 하나로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것. 시는 여기에서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성찰하는 것이다.
시인은 접히면서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날들과 함께 시인이 말하는 ‘접히지도 정돈되지도 않는 날들’은 어떤 날들일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시인은 그러한 의문점을 마지막 행에서 일깨워주고 있다. ‘꿈보다 그리움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정리될 수 없는 그리움을 지니고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시절의 친구들, 혹은 아름다운 풋사랑일 수도 있겠다. 인간적인 마음이 묻어나는 시이다.
시인은 살아오면서 접히는 것과 접혀지지 않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접혀지지 않는 것들에게까지 마음을 내어주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나도 오늘은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은 것들을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며 접어보고 싶다. 입추가 지났다. 이제 폭염도 접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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