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금 세밑이다. 올해도 닷새 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따라서 주부가 가계부를 적듯 각자 올해의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를 작성하고 검토까지 하고 볼 일이다.
그것의 장르는 경제적이든 평소의 생활 습관 내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역시 참 다사다난했다. 생활 형편은 여전히 구겨진 모습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때론 자존감까지 갉아먹는 경우도 다발했다. 힘든 공공근로를 하면서는 연전 경비원으로 일했을 때와 같은 갑질을 경험해야 했다. 그럴 적마다 나 자신이 다시금 망가지고 있다는 자괴감에 많이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시민기자 활동에 더욱 주력했다. 덕분에 천사처럼 고운 분을 더러 만나는 행운과 조우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다섯 번째 저서의 출간을 더욱 적극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홍경석은 어차피 가난한 작가”와 “촌지 안 받는 정정당당한 기자”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한 터였다. 따라서 더 이상 숨기거나 가식적으로 대응한다는 건 더욱 추락하는 가치 상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좌고우면 끝에 크라우드 펀딩 후원 출판 지원금을 마중물로 삼아 다섯 번째 저서를 출간하고자 작심했다. 실천에 옮겼더니 스무 명이 넘는 지인들께서 도움을 주셨다. 이를 토대로 막바지 집필과 수.교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삼 금년을 돌이켜봤다. 올해는 어쨌든 소득이 꽤 짭짤했다. 효자 아이들 덕분에 부산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아내와 1박하는 호사를 누렸다. 존경하는 문학박사 형님 덕분에 머리털 나고 난생처음 제주도까지 여행했다.
한여름에는 아들 부부와 손자까지 함께 하는 피서를 즐겼다. 손자의 고사리손을 잡고 잠을 자노라니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러면서 화복무문(禍福無門)의 감회를 새삼 절감했다.
‘화복무문’은 “화복(禍福)이 오는 길에는 문이 따로 없다(無門)”라는 뜻이다. 재앙이나 복은 모두 사람이 자초하는 것이므로 악한 일을 하면 화가 들어오는 문이 되고, 착한 일을 하면 마찬가지로 복이 오는 문이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후자에 무게가 쏠린다. 세상에 뉘라서 불행을 원하겠는가? 그러자면 유비무환(有備無患) 차원의 주위상책(走爲上策)이 필요하다.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달아나는 것은 모양이 빠진다. 대장동 의혹 등의 사건과 뇌물 수수 혐의로 대표와 중진의원에 대한 수사와 체포 동의안 등으로 야당이 어수선하다.
야당은 이를 야당 탄압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국민적 시선은 엄동설한처럼 차디찬 게 사실이다. 우리 같은 소시민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오라고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이질적인 괴리감이 장강처럼 넓게 보이는 이유다. 오늘 이메일로 도착한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울리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 “세상의 모든 씨앗들은 자신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얼어붙은 동토에서, 축축하고 어두운 땅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한다.
명인은, 스승은, 또는 멘토는 자기가 가진 씨앗 속에 햇살과 바람, 꽃과 열매의 향기가 들어있음을 깨우쳐 주는 사람이다. 명인이 명인을 만든다.” =
우리 같은 소시민은 항상 정정당당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거늘 면책특권의 뒤에 숨어 툭하면 지지자들만 끌어모으려는 팬덤 정치만 추종하는 정치인들은 정말 국민의 대표 맞나?
명인(名人)은 비겁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나도 명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