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낙타, 허형만 시인 '허리안개'

허리안개 - 허형만 -
지리산 중턱을 에둘러싼
저 안개 속으로
재 한 마리 빨려 들어간다
빈 하늘에
호르르 호르르
바람칼* 날던 소리만
물빛처럼 반짝인다
내 생애의
한 줄기 자드락길*도
저 허리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참 이윽하다*
[* 詩어 설명]
*허리안개: 산중턱을 에둘러싼 안개
*바람칼: 새의 날개
*자드락길: 낮은 산기슭의 비탈진 길
*이윽하다: 느낌이 은근하다
詩評 - 강 솔 -
허형만(1945~) 시인의 시집 『불타는 얼음』에 실려 있는 시다. 시인은 지리산에 들어 ‘재 한 마리 빨려 들어가’는 안개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 어디에선가 ‘바람칼 날던 소리’를 듣고 있는 게다. 역동적이면서도 고요한 광경을 바라보던 시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일궈낸 깨달음으로 돌아온다.
선경과 후정의 마음이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길을 ‘자드락길’ 즉 낡은 산기슭의 비탈진 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자신의 삶을 겸손하게 내어놓음으로써 자신도 허리안개로 표현되는 은총의 어디쯤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시인의 마음이 참 이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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