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구경은 물염정으로
가을 구경은 물염정으로
  • 김 옥 시민기자
  • 승인 2011.10.1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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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노송·단애 등 볼거리 풍성

가을바람 따라 여유롭게 가을을 품고 있는 화순 물염 적벽(勿染赤壁).

물염적벽은 화순 적벽에서 3km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병풍처럼 둘러있는 기암괴석과 노송, 그리고 단애의 절경도 아름답지만 비단결 같은 강 자락 품안에 하늘빛 푸르름과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물염정이 세워져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물염정은 중종 명종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 송씨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이다. 송정순이 정자를 지으면서 썼던 '물염정기'에 의하면 ‘물염’ 이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이런 절경의 산수에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가 줄이어져 왔음은 정자에 걸린 시문을 보고 알게 된다. 김인후, 권필, 이택당, 민단암, 김농암, 김창흡 등 많은 당대 명사들이 노래했던 글속에서 옛 풍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화순 이서 출신 규남 선생도 물염정을 중심으로 당대 학자들과 교류하고 강학을 했던 곳이다. 그는 학풍을 잘 말해주듯 한 구절 음미한다.

"지금의 선비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가 학문이요 둘은 문장이며 셋은 과업(科業)이니 소위 학문으로 일등인(一等人)을 자처하는 이름 뿐이라" 하였다.

몇 해 전 허위학벌 파문으로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마당에 심성, 이기(理氣)논쟁에 경도되어 현실과 유리된 학문적 역 흐름을 비판했던 말이 문득 살아나 들리는 듯하다.

사회가 학력의 겉모양을 벗고 내실의 능력의 옷을 갈아입어야 할 시대적 사명감에 팔 걷어붙인 따끔, 통쾌, 상쾌, 명쾌한 호통이 아니겠는가.

평생 동안 하늘빛 한 점 우러러 보지 못하고 삿갓 쓰고 전국을 떠돌았던 천하의 풍류시인 김병연(1807∼1863) 도 이곳에 이르러 태고의 절경에 흠뻑 취하여 오랫동안 머물다 오랜 방랑을 접고 자신이 태어난 경기도 양주 땅을 버리고 마지막 시심의 몸을 화순 땅에 묻은 곳. 더 이상 절경에 관한 구구한 설명이 되레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백번 말보다도 한번 눈으로 보는 게 해답이다. 물염정 오른쪽에 죽장에 삿갓 쓴 김삿갓(김병영)의 동상과 함께 오석에 담긴 8폭 병풍의 김삿갓 시비가 있다.

풍경에 취해버리고 말았던 김삿갓의 마을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강은 적벽 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江非赤壁泛舟客)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地近新豊沽酒人)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今世英雄錢項羽)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當時辯士酒蘇秦)

김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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